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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여름 자몽 시리즈: 자연과학의 다학제적 탐색] 3. 과학철학, 과학의 끝에서 철학을 만나다.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7기 | 윤성주


현대 학문을 구분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는 ‘문과’와 ‘이과’의 이분법일 것이다. 이는 곧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학문의 거대한 축을 가리키며, 보통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과, 자연의 법칙을 규명하고 기술로 구현하려는 자연과학은 그 접근 방식과 방법론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종종 대립적 관계로 인식되기도 한다. 과연 이 두 학문은 완전히 분리되는 정반대의 학문인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과학 철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조명된다. 과학 철학(Philosophy of science)은 과학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으로, 과학의 방법, 개념, 그리고 전제와 지적활동 분야를 대상으로 삼는 철학이다. 자연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추구하는 과학의 세계에 ‘과학이란 무엇인가?’ ‘어떤 방법으로 과학적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가?’ 등의 철학적 질문이 개입함으로써 과학의 기초를 성찰하고 방법을 고민하며 그 한계까지도 탐구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마치 학문의 양 끝에 놓여 있는 듯한 과학과 철학은 과학철학이라는 분야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여 더 깊고 통합된 지식의 장을 열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철학 일러스트(사진=chat GPT 생성)


본 기사에서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시고 계신 천현득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학 철학이란 무엇인지, 과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통해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보고자 한다. 또한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과 같이 융합연구의 장점에 대해서도 함께 논해보면서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학제 간 소통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천현득 교수님. (사진 = 천현득 교수님 제공)


Q. 교수님께서 과학철학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저는 학부 때는 물리학을 공부했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철학을 부전공했었고, 이후 철학을 공부하기로 다짐하고 대학원은 철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철학의 분야 중 그래도 과학과 가까운 철학을 하자는 생각에 과학철학을 지금까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세상의 어떤 근원적인 모습, 궁극적인 모습에 관심이 있어서 물리학을 전공했었는데, 실제로는 계산만 하다 끝나겠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탐구하는 데에는 철학이 좀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과학철학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철학에 대하여


Q. 과학철학 연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과학철학은 철학의 하위 분류 중 하나입니다. 철학은 여러 분야로 나뉘는데, 전통적으로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탐구하는 형이상학과 존재론,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인식론, 인간의 지적 능력과 사고 과정을 분석하는 지능론, 사고의 형식과 타당성을 연구하는 논리학, 그리고 특정 분야를 메타적으로 고찰하는 예술철학, 법철학, 과학철학 등으로 구분됩니다.

그 중 과학철학은 기본적으로 ‘과학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에서 출발하는 학문입니다. 과학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좋은 과학, 더 바람직한 과학에 대해 탐구하고, 그 다음에 과학의 가치를 연구하는 것이 목표인 학문입니다.

Q. 과학철학 분야에서는 어떤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나요?

A. 현대 과학철학은 다른 융합 연구와는 달리 20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어 100년 넘게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역사가 긴 학문입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분야가 존재합니다.

일반과학철학과 개별과학의 철학으로 크게 나뉘는데, 먼저 일반과학철학 분야에서는 ‘과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 또는 ‘과학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그러한 방법들을 형식화 할 수 있는가?’ ‘‘과학’적인 증거란 무엇인가? 언제 증거가 되고 언제 증거가 되지 않는가?’ 와 같은 질문들을 가지고 연구를 많이 합니다.

개별과학의 철학 분야에서는 각 개별과학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의 철학에서는 그중에서도 양자이론이 갖고 있는 어떤 독특한 철학적 문제들 또는 상대성이론에서의 시공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들이 있고, 생물학에서는 유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 생물의 진화에 관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또한 최근 큰 이슈인 AI에 대한 윤리적 문제, AI의 존재성 문제와 같은 다양한 질문들도 철학적 답변을 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분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철학 문제들에 관해 탐구하는 것이 개별과학의 철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입니다.

Q. 양자이론에서의 철학적 문제에는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A. 양자이론은 물리학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인 질문이 많이 제기되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파동함수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인지, 아니면 단지 수학적 도구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만약 파동함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중첩 상태’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뒤따릅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양자역학의 철학적 문제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이 있습니다. 이 사고실험에서는 고양이가 동시에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즉 중첩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입니다.이러한 난해한 문제들에 대한 해석으로는 코펜하겐 해석, 봄 해석(조화역학) 등의 다양한 접근이 존재하며, 이는 양자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철학적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진 = NAVER 지식백과)


Q. 과학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진 학문이라고 보시나요?


A. 과학적 탐구의 끝에 가면 늘 어떤 종류의 철학적 문제가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언급했듯이 시공간 철학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늘 전제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물리적인 질문이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물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그걸 어디서 시작 하는건지? 물체와 물질은 다른 건지? 에너지와 물질은 어떻게 다르고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 시공간을 이뤄야 시간과 공간이 정의되는 것인지? 같은 물음말이죠. 이렇듯 모든 연구의 밑바탕에는 그 개념이 도대체 뭐지? 어떻게 해서 그런 추론이 가능한 거지? 에 대한 것을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물음의 극단, 그 물음의 첨단에는 항상 철학적인 질문이 자리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철학이 이러한 상호 보완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과학철학이라는 융합적인 분야가 과학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학제적 연구에 대하여 


Q. 과학철학을 포함한 여러 융합연구의 장점과 단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융합연구에는 단점이라기 보다는 어려운 점이 존재합니다. 모든 학자들은 자신의 어떤 전문 분야를 공부할때, 흔히 이야기하는 토마스쿤의 패러다임 속에서 훈련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야 안에서 그 분야 만의 패러다임을 따라 전문성을 길러왔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과 비슷한 유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소통의 어려움이 많이 생깁니다.   

하지만 장점도 분명히 있죠. 이러한 차이들을 좁혀 나가면서 연구를 해 나간다면 한 분야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결국 보게 되는 것인데, 자연과학 내에도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도 생명과학에서 약간 벗어나 화학적으로 해석하니까 답이 나왔고, 물리학에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생각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문제가 나온 것이기도 하니까요.
 

생각해보면 현대에 와서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에는 융합연구, 학제 간 연구가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전문성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Q. 그렇다면 이러한 융합연구 트렌드에서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은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할까요?

A. 먼저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열심히 연구했으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본인의 전문 분야인데 옆사람이 보면 더 잘 보이는 그런 경우도 있거든요. 따라서 다른 분야의 관점은 어떤 지도 항상 살펴보는 열려 있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자연과학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를 헤쳐 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융합 일러스트. (사진 = 미리캔버스)


천현득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학철학은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두 학문 간의 상보적 관계를 통해 새로운 학문의 장을 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바탕에 깔린 개념적 전제와 논리적 구조, 그리고 방법론의 타당성을 끊임없이 묻고 해석함으로써 과학이 놓치기 쉬운 근본적인 질문들을 드러낸다. 천현득 교수님의 설명처럼 과학의 가장 깊은 끝에는 언제나 철학적 사유가 기다리고 있으며, 그 지점에서 과학과 철학은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다.

또한 오늘날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와 기술적 문제들은 단일 학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시대에 과학철학과 같은 융합적 학문은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보다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이제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기본이며,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 대한 이해와 개방성 또한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낯선 타 학문의 언어를 이해하고 다른 시각을 존중하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를 더 깊고 넓게 바라보게 해주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통찰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과학과 인문학을 포함해 여러 학문들이 그 경계를 넘어서며 각자의 분야를 확장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1] Bertrand Russell(1945년),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George Allen & Unwin Ltd.
[2] 류명걸(1998년), 『서양철학일반』, 형설출판사.
[3] 곽영직 외 1인, 『Q&A 과학사 : 이것만은 알고 죽자』, ㈜살림출판사, 2010. 2. 18.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윤성주 기자 ysj00020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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