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겨울 자몽 시리즈: 과거에서 날아온 자연과학 수업!] 우생학의 경고 : 과학적 진리의 어두운 그림자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7기 | 윤성주
1. 과학은 절대적인가?
현대 사회에서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신에게 기도하고 미신에 의존하던 과거보다는, 논리의 체계를 가진 과학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 현대사회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보할 수 있을까? 또한 과학적 사실에만 부합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과학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어떠한 주장이 ‘과학’이라는 명찰을 달게 되면 그 주장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춘 것으로 인식되며 쉽게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과학의 절대적인 위상에 의해 과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되고 특정한 목적에 의해 악용된다면 생각보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때론 간과하기도 하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성행했던 우생학(Eugenics)이다. 유전학의 긴 역사 속 ‘우생학’이라는 짧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과학적’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을 선별하고 차별하는 이론으로 확산되어 수많은 비극을 초래하였다. 본 기사에서는 우생학의 시작과 과학적 기반, 몰락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살펴보면서 ‘과학의 절대성’에 대한 경계를 가져야 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DNA 일러스트
2. 우생학의 태동과 과학적 근거
우생학(Eugenics)은 우월한 유전자를 가려내 인간종족의 개량을 도모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는 20세기 초반의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태동하였는데, 이 시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의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중간계급의 출산율은 감소하게 되었고, 하층계급의 억제되지 않은 부적자(不適者) 생산에 대한 사회적, 대중적 우려가 존재하였다. 여기서 부적자(不適者)란 당시의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분류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뜻했는데, 여기에는 범죄자, 정신질환자, 장애인, 동성애자, 유대인, 극빈층 등 사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거나, 대중적인 혐오가 있는 집단이 포함되었다. 부적자들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회적 상황에 힘입어 우생학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과학적 기반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얻었다.

프란시스 골턴(1822.2.16~1911.1.17) (사진=상담학사전)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생존하고 번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개념을 다윈의 의도와 다르게 사회에 적용하여 ‘사회다윈주의’가 등장하였는데, 이는 생존조건에 적합한 자가 살아남기 마련이라는 이론으로 어떤 인간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내며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을 제거하거나 배제하면 인류가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기반을 토대로 프란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1883년 ‘생물통계학’(인간이 지닌 특성들을 과학적으로 측정함으로써 인간을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으로부터 인간사회의 출산율을 조절하기 위한 우생학을 고안해냈다. 우생학은 부적자들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감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인류의 진보’라는 명목하에 인간종을 개량하고자 하는 갈망을 지닌 일부 생물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3. 우생학의 성행과 악용 – 미국의 불임법과 독일의 유대인 학살
우생학은 유전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장려받아야 한다는 개념의 포지티브(positive) 우생학과 열등한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출산을 제한당해야 한다는 네거티브(negative) 우생학으로 나뉜다. 우생학 태동의 초기인 19세기 말, 골턴과 그 지지자들의 연구는 포지티브 우생학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지만 20세기 초부터는 부적자들의 자손번식을 억제하려는 의도로 네거티브 우생학이 훨씬 더 우세하게 연구되었다. 네거티브 우생학은 부적자들에 대한 혐오를 가진 대중들과 부적자들을 제거하여 사회적 성장을 도모한 정치가들의 지지를 업고 윤리적 문제는 차치한 채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었는데, 이는 1907년 미국이 강제 불임시술을 최초로 법률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생물 통계학자인 칼 피어슨은 “일단 태어난 모든 사람은 각자 살아갈 권리를 지니고 있지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이들이 출산할 권리를 지닌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유전학자들의 주장은 미국에서 시작하여 스위스,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핀란드, 스웨덴, 일본까지 차례로 불임시술을 법률로 제정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1907년에서 1948년 사이 매달 100여 명씩 수술하는 방식으로 캘리포니아에서만 19,042명, 전국적으로는 총 50,193명이 불임시술을 받았다. 불임시술을 받아야 할 대상은 법정에서 판결하였는데, 비행과 범죄행위자,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인과 빈곤자가 그 대상이었다.

1934년 1월 당 대회에서의 히틀러 (사진=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특히 우생학은 나치의 각종 만행의 과학적 기반이 되어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나치는 정신병을 포함한 각종 질병환자, 장애자, 비행자들을 불임으로 만든데 이어 유대인, 보헤미아인, 동성애자 및 그 밖의 일탈자로 간주된 사람들을 제거하면서 인간종의 유전적 개량이라는 구실 아래 우생학을 자의적인 방식에 따라 이용했다. 나치의 만행들은 몇몇 왜곡된 생각을 지닌 개인들뿐만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 영역에서 의견을 함께 했던 생물학자들과 의사, 대중, 정치인들과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1100만명을 학살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초래했다.
4. 우생학의 몰락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패망하면서 나치 독일의 범죄가 밝혀졌고 우생학은 급격히 몰락하였다. 나치 정권이 저지른 범죄가 국제적으로 규탄받으며, 우생학은 과학적 논리가 부족한 비윤리적 이론이라는 주장이 중론이 되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생학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선언하였고, 우생학은 유전학계에서 사장되었다.
우생학의 몰락과정에서 주목해봐야 할 점은 다른 과학적 이론이 몰락하는 과정과 달리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몰락하였다는 것이다. 보통 과학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려면 이전 이론에서 심각한 오류가 발견되거나, 어떠한 주장이 이전 이론에 비해 압도적으로 현상을 더 잘 설명하여야 한다. 하지만 우생학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우생학적 논리를 가장 잘 사용하였던 나치 독일이 패망하였다는 점과 우생학적 논리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였다는 것이 몰락의 가장 큰 이유였다. 우생학의 시작 또한 사회적인 혼란과 대중적인 지지에 있었고 우생학의 패망도 과학 외부의 요인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이는 과학이론의 성립이 그 자체의 이론적 기초뿐만 아니라,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부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5. 우생학이 남긴 교훈

미국 우생학 협회 로고 (사진=과학으로 생각한다)
'우생학은 인류진화라는 자기 지향성을 갖고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또 우상핵은 다양한 학문적 자원을 뿌리로 두고 자라난 나무라는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위 주장처럼 ‘우생학’은 떨쳤던 영향력에 비해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지 않는다. 과학의 영역보다는 사회와 정치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우생학은 당시 유전학계의 보편적인 이론이었고,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위상을 가지긴 하였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천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낳았다. 이는 과학이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윤리적 검토 없이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엄청난 나비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생학은 사회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서도 심각하게 되짚어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과학사’이다.
우생학의 역사는 과학이 반드시 진보와 발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과학적 이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고, 때로는 그 이론이 사회적, 정치적 목적에 의해 악용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때론 위험하며, 과학이 진정으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그 자체의 객관성을 넘어서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생학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그것이다.
'참고 자료'
앤커,톰 셰익스피어 저, 『장애와 유전자 정치 :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 까지』, 김도현 역, 그린비, 2021
앙드레 피쇼 저, 『우생학: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 이정희 역, 아침이슬, 2009
김춘경 외 4인 저, 『상담학 사전』, 학지사, 2016.01.15
강상원 저, 『Basic 고교생을 위한 세계사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2
이상욱 외 3인 저, 『과학으로 생각한다 :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 동아시아, 2007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윤성주 기자 ysj000208@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