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휴전선 너머의 화학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8기 | 박희수
   

   휴전선 너머 북한의 화학은 망가졌다. 분명 그들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일제가 남긴 여러 중화학 공장들이 남아있었다. 이 때문인지, 해방 이후 여러 우수한 과학자들이 월북하였으며,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그들의 화학은 우리를 앞질러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지금 북한의 화학은 몰락하여 오남용되고 있는가? 또, 과연 우리는 그들의 과오를 답습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부터 그들의 오답 노트를, 아니 어쩌면 우리의 오답 노트가 될 수 있는 북한의 화학,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보자.
   

  
휴전선 너머의 찬란했던 화학
    

   상기한 것처럼, 북한은 많은 양의 지하자원과 일제가 남긴 시설, 그리고 공작을 통해 데려온 우수한 인력이 있었고, 이것에 맞추어 북한의 공산당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부었다. 공산당은 여러 연구시설을 짓고, 과학기술 연구 시스템을 체계화할 뿐만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을 소련으로 유학 보내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이에 부응하듯, 북한은 기초 화학 분야에서 눈에 띌만한 성과를 보였다. 북한은 질소 비료를 비롯하여 인비료, 석회 비료 등 다양한 종류의 비료를 우리보다 먼저 자체 생산 및 공업화하는 데 성공하여 식량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며, 합성 고무, 염화 비닐 등 기초적인 화학 자원에 대한 성공적인 생산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 가장 눈에 띄었던 연구 성과는 월북 과학자 ‘리승기’의 비날론이다. 비날론은 1939년 일본의 과학자와 리승기가 공동으로 개발한 합성 섬유의 일종으로, PVA(폴리 비닐 알코올) 기반으로 합성되는 섬유이다. 이후 1950년대 월북한 리승기가 공산당의 지원을 받아 공업화에 성공하였다. 이때 개발된 합성법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석회석을 가열해 생석회를 얻고, 이를 석탄과 반응시켜 카바이드를 수득한다.
CaCO₃ → CaO + CO₂ , CaO + 3C → CaC₂ + CO

2. 얻어진 카바이드를 물과 반응시켜 발생하는 아세틸렌 가스를 포집한다.
CaC₂ + 2H₂O → C₂H₂ + Ca(OH)₂

3. 아세틸렌 가스와 아세트산을 반응시켜 아세트산 비닐을 합성한다. 더해서, 당시에는 개발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아세트산 아연 [ Zn(OAc)₂, Zn(C₂H₃O₂)₂ ]을 촉매로 하여 반응을 진행하기도 한다.

4. 아세트산 비닐을 중합하여 PVAc(폴리비닐아세테이트)를 합성한다.

5. PVAc에 메탄올과 염기를 첨가해 아세테이트를 떼어내어 PVA를 얻는다.

6. 폼알데하이드를 가하여 PVA의 OH기를 제거한다.

  

   전반적인 과정의 의의를 요약하자면, 비교적 구하기 쉬운 석회석과 석탄만을 가지고, PVA를 합성하고, 이를 가공해 섬유의 성질을 띠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물풀의 주재료로 사용되기도 하는 PVA는 매우 많은 하이드록실기를 가지고 있어, 물에 잘 녹는 수용성일뿐더러 접착성을 가져 섬유로 사용될 수 없으나, PVA의 하이드록실기를 처리함으로써 섬유로 사용될 수 있게 변형한 것이다.
   

리승기의 모습 (좌), 김정일의 비날론 공장 시찰 (우) (사진 출처 : 연합 뉴스)
  
  

  
잘못된 정부의 정책과 몰락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리승기의 연구 성과는 북한의 화학을 망가뜨린 출발점이 되고야 말았다. 비날론은 원자재를 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생산 단가가 비싸고, 많은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하며, 섬유의 품질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공산당은 단점을 무시한 채 과학기술과 실용성보다 사상을 앞세워 무분별하게 비날론을 생산하였고, 이것이 실패의 화근이었다. 당시 북한 정부는 자신의 땅에서 생산한 원료, 석회석과 석탄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기술로 섬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였고, 비날론에 ‘주체 섬유’라는 이름을 붙이며 비날론의 대량 생산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1950~1960년대에는 비날론의 대량 생산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특히, 소모적인 성격이 강한 작업복 등에 적절히 사용되는 등 북한 주민의 삶을 일부 개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다만, 본격적인 문제는 1970년대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산당은 전력 시설이나 화학 원료 및 폐기물 처리 시설 등, 비날론 합성의 기반이 되는 설비를 무시한 채 단순히 체제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비날론을 사용하였다. 때문에, 비날론 공장의 건설은 보여주기식 속도전으로 허술하게 건설되었으며, 기반 시설의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공장은 확장되었다. 이와 같은 과도한 확장은 비날론의 생산 단가가 비싸고 많은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한다는 단점과 맞물려 북한의 전력을 비롯한 자원을 급속도로 고갈시켜 나갔으며, 처리할 수 없는 부산물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비날론 생산 시설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채 지속해서 자원을 요구하기만 하였고, 과도한 비날론 공장 확장으로 인해 짊어진 감당할 수 없는 부채는 북한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켜 추후 ‘고난의 행군’을 유발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더 나아가, 자신만의 기술과 자신의 땅에서 난 자원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자는 ‘주체 과학’에 집착한 북한 정부의 화학 산업 정책은 단지 ‘비날론’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자신의 땅에서 채굴되는 석탄에만 집중하였고, 화학 산업 역시 석탄 중심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실상 더 효율적인 석유화학은 자국의 기술과 자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술하게 도입한 채 외면하곤 말이다. 이 때문에, 현재 북한의 화학은 1960년대, 석탄 위주의 화학에 멈추어있다. 현재 북한에는 반도체,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 분야의 화학 산업은 물론이고,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제약 산업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석유 기반의 화학 공장도 전력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가동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아무도 이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수많은 지식인이 무분별한 ‘주체 과학’에 대해 반대의 견해를 밝혔다. 대표적으로 월북과학자인 ‘려경구’는 비날론의 경제성에 의문을 표하며, ‘폴리 염화 비닐’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적 섬유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숙청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화학은 성장의 동력을 아예 상실했다. 연구 실적보다 사상, 당에 대한 충성이 더 중시되는 기이한 형태로 변질된 북한의 화학계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처럼 북한의 화학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철저히 망가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현재 북한의 화학 기술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북한의 화학이 성과를 내고 있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방산 분야이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공산당의 지원하에 사실상 핵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근래에는 미사일에 사용될 고체 연료를 성공적으로 도입하였다. 더해서, 공산당은 생화학무기의 생산을 지원하였으며, 이미 상당한 양의 생화학무기를 생산, 미국, 러시아를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작 국민의 삶의 질을 책임질 실용적인 화학 연구는 등한시 한 채로.
   

   정리하자면, 북한의 화학은 1950년대 좋은 조건으로 출발해 비료를 비롯한 화학 공업을 발전시켜나갔고, 이 과정에서 ‘비날론’이라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다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 탄압으로 인해 북한의 화학은 성장 동력을 잃었고, 현재에는 정부의 주도하에 무기를 만드는데 화학이 오남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사례는 정부의 정책이 과학계에 미치는 파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나라의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려면 단순히 양질의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현명한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아라, 북한의 화학은 양질의 자원을 가지고도 잘못된 정부로 인해 처참히 망가지지 않았는가?
   

  
타산지석으로 삼아 성찰하자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떠한가? 물론 우리나라의 상황이 북한과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북한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70~1980년대 공업 발달을 꾀하기 위해 중공업 분야에 전폭적인 투자를 진행하였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반도체, 배터리 등의 첨단 분야에 투자해 세계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기술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근래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행보는 심히 우려스럽다. 최근 여러 논란이 되었던 R&D 예산 삭감은 안 그래도 부족했던 과학기술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여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연구자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아 유능한 국가 인재는 메디컬 계열로 유출되거나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누군가는 단순히 교육의 평등을 주장하며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영재고, 과학고의 폐지를 비롯하여 대학의 무분별한 평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누가, 어느 기관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책임지고 견인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단지 자연과학과 우리의 연구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향방 또한 주시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인, 고위공직자, CEO 등 국가 정책과 투자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인물 중 이공계 출신 인물의 비율이 매우 낮아 효율적인 과학기술 정책의 수립과 적절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비롯한 자연과학 연구자와 공학 연구자들이 국가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피력해서 우리나라의 정책을 우리의 손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서울대학교 ‘정부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R&D특위)’가 개최한 공청토론.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과학기술계가 목소리를 내는 좋은 예이다. (출처 : 서울대저널)
  
  

   이제는 더 이상 과학과 연구만을 보고 달려나갈 때가 아니다. 우리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고, 또 그 성과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하다.
    


참고 문헌
   

Morrow, B. A. (1984). The initial mechanism of vinyl acetate synthesis from acetic acid and acetylene catalyzed by active carbon-zinc acetate. Journal of Catalysis, 86(2), 328-332.
Nawaz, A., & Hümmelgen, I. A. (2019). Poly (vinyl alcohol) gate dielectric in organic field-effect transistors. Journal of Materials Science: Materials in Electronics, 30(6), 5299-5326.
Patent no. 147,958, February 20, 1941, Ichiro Sakurada, Yi Sung-ki Lee. S. or Ri. Sung.Gi. and Hiroshi Kawakami, issued to Institute of Japan Chemical Fiber. 
강혜진, 김병섭. (2018). 정무직 공무원의 균형인사. 행정논총, 56(3), 1-31.
권준수. (2020년 2월 14일). [해럴드 광장] 정치 신인에 이공계 전문가를 과감히 영입해야.  https://biz.heraldcorp.com/article/2228860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박희수 기자 huisuhuisu07@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