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2026 여름 자몽 시리즈] 04. 테넷: 과거-현재-미래의 경계에서

자연대 학생기자단 자:몽 8기 | 이준서
  

   자그마치 600만 년에 달하는 인류사는 공간 확장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 양질의 자원과 드넓은 토양을 얻기 위해 부단히 농지를 개간하고 교역망을 구축한 결과 우리는 인류 문명이라 자부하는 거대한 공간을 일궈냈다. 그러나 인간의 기술은 시간을 절약할 수는 있으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하는, 어쩌면 가장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한계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2020作) 은 미래의 인류가 시간이라는 마지막 남은 차원을 정복하려는 음모와 이에 저항하는 세력 간 충돌을 그린다.
 

“우리는 황혼의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현재-미래의 경계에서
 

   공연을 앞둔 우크라이나 국립 오페라 극장은 난데없이 등장한 테러범에 아수라장이 된다. 주인공과 동료는 무장한 상태로 현장에 긴급 투입되지만 어째서인지 2층 VIP석으로 향한다. 알고 보니 이들은 혼란을 틈타 어떤 '물건'을 찾으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우크라이나군으로 위장한 CIA 요원들이었다. 총격을 피해 객석 사이로 숨어든 주인공은 총알이 박힌 의자에서 총알이 빠져나와 자국이 말끔히 복원되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현장에서 빠져나와 연구소로 향한 주인공은 시간의 흐름을 미래에서 과거로 바꾸는 '인버전(inversion)' 기술의 존재와 미래의 누군가가 인버전한 사물을 현재로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빈 총기로 목표를 겨냥하자 총알이 오히려 뽑혀 나와 총기에 탄피가 장착되는 것을 보고 주인공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그를 본 연구원은 건조한 표정으로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고 조언한다.
 
 

인버전한 총을 총알에 겨누면 총알이 뽑혀 나온다. (사진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한편 주인공은 시간의 흐름이 반전된 무기의 출처를 추적하던 중 “우리는 황혼의 세상에 살고 있다”라는 암구호를 통해 조력자 ‘닐’을 만난다. 그리고 미래의 세력, 일명 '테넷'이 '인버전' 기술을 고안했으며 러시아 출신 사업가 ‘사토르’가 그 조력자임을 알아낸다. 이에 조력자 '닐', 미술품 감정사 '캣'과 함께 인버전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를 막기 위해 과거-현재-미래의 경계를 넘어보기로 한다.

"내겐 몇 년 전에, 넌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에": 인버전의 물리학
 

   머리 위로 공을 던졌다가 받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누군가 이를 촬영해 역재생하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운동하던 공을 손으로 받는 영상을 얻는다. 여러 조건을 무시하면 두 운동 모두 '물리적으로 가능한', 즉 재현 가능한 운동에 해당한다. 반면, '재현 불가능한' 운동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서로 다른 두 물질의 혼합이 있다. 물에 떨어뜨린 잉크 방울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물-잉크가 분리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두 운동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물리량이 바로 '무질서도'라고도 알려진 '엔트로피'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질서'란 '질서가 없거나 파악하기 곤란해 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존재할 수 있는(즉, 가능한 미시상태의 수가 많은) 상태라는 의미를 갖는다. 투과 가능한(permeable) 막을 경계로 한쪽에는 잉크 입자, 다른쪽에는 물 입자만 존재하는 상태를 자연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영겁의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가능할 것이다. 한편 양쪽에 물과 잉크입자가 절반씩 섞여 있는 수조(水槽)는 현실적으로 납득 가능한 경우에 해당한다.
 
    물리학은 무질서한 상태일수록 더 높은 엔트로피를 가지며, 모든 운동은 계의 총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이상적인 경우 엔트로피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열역학 제2법칙의 간결한 표현을 빌리자면,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열역학에서 말하는 '평형 상태'란 '엔트로피를 극대화한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정의가 시간을 이해하는 데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 기대되곤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계는 시간의 흐름을 반전시킨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발상에서 작품을 풀어나간다.

<테넷>속 숨겨진 디테일: 쌍소멸과 단일전자우주가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아이디어와 함께 킵 손 교수의 자문으로 제작된 <테넷>에는 물리학적 디테일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다. 영화 속 인버젼 장치 '회전문'은 유리를 기준으로 파란색 공간과 빨간색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빨간색 공간을 통해 회전문에 들어가면 반대편 파란색 공간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원래 시간 순서대로라면 파란색 공간의 사람들은 회전문에서 나오고 있어야 하지만, 이들은 인버전 효과를 부여받았기에 그 반대인 들어가는 방향으로 관찰되는 것이다). 요원은 주인공에게 "입자와 반입자의 쌍소멸처럼, 인버젼된 자신과 만나면 소멸할 수 있다"라고 주의를 준다. 영화 후반부의 전투 장면에서도 지휘관은 병사들을 파란색 팀, 빨간색 팀으로 구분하여 되도록 접촉하지 않을 것을 주문한다.
 
 

주인공과 인버전 장치인 ‘회전문’의 모습. (사진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이러한 영화의 설정은 1940년 존 휠러에 의해서 제안된 '단일전자우주(one-electron universe)가설'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일전자우주 가설은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의 존재를 미래에서 과거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전자의 자취로 설명한다. 이 가설은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1965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휠러 교수와의 일화를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나는 어느 날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휠러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파인만, 모든 전자가 같은 전하와 같은 질량을 갖는 이유를 알았어요.” “어째서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같은 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어서 전화로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생각했었던, 단순히 시간 방향으로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 시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매듭의 세계선을 생각해 보세요. 고정된 시간의 평면으로 그 매듭들을 끊으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세계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무수히 많은 전자들을 나타내는 겁니다. 한 가지만 빼고요. 한 쪽이 보통 전자의 세계선이라면, 반전되어 미래에서 내려오는 다른 쪽은 다른 부호들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은 바로 전하의 부호를 바꾸는 것과 같지요. 그 경로가 바로 양전자처럼 보일 겁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 미래가 과거를 위협할 때
 

   "만일 시간여행자가 자신의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로 여행해서 자신의 조부모를 살해한다면 그는 과연 태어날 수 있을까?" 영화 속 '닐'이 '할아버지 역설'이라 불리는 흥미로운 상황을 제시하자 주인공은 정답을 묻지만 '닐'은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주인공과 공항 건물 내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요원의 정체가 미래의 인버젼된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관객들은 "과연 행위의 진정한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조우라는 소재는 고전문학 역시 심심치 않게 기용해왔다.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는 친척이었던 카우라바 집안과 판다바 집안 사이에 벌어진 권력 쟁탈전을 통해 많은 전설과 교훈적인 내용을 전한다. 다양한 기록 가운데 카쿠드미(Kakudmi)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의 아름답고 뛰어난 딸 레바티(Revati)의 신랑으로 어떤 남자를 선택해야 할지 물어보기 위해 힌두교 최고의 신 브라마(Brahma)를 찾아간다. 그리고 브라마 신이 두 사람을 만났을 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의 시간과 인간이 살고 있는 땅의 시간이 매우 다르다는 것. 신의 세계에서 20분의 시간은 인간 세상에서 1억 1600만 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카쿠드미 왕과 그의 딸이 수백만 세대를 건너뛰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쿠란, 유대교 등의 신화 속에도 '시간여행'의 원초적 형태가 등장한다. 이렇듯 시간여행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상상 가능한 개념이라는 생각에 힘이 실린다.
 
   그러나 시간여행이 가능케 하는 여러 상황이 모순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원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과 대척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결정론자들은 과거-현재-미래의 상태는 정해져 있으며 단지 인간이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분기점을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인버젼된 물체를 들어올리려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곁에 있던 연구원이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야 잡을 수 있다"라고 조언하자 그제서야 물체가 튀어올라 주인공의 손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주인공의 의지가 미래를 결정하는 데 개입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이지만, 다음 순간 주인공이 모든것이 "직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언급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생존은 각 세대의 문제야": 종말의 테넷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라서는 인버젼 기술과 알고리즘을 활용해 세상의 종말을 앞당기려는 '사토르'와 주인공이 통화하며 긴장이 고조된다. 미래 세대를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에 허덕이게 만든 것은 선조 세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사토르에게 주인공은 "생존은 각 세대의 문제"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종말을 통해 세계를 태초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그들의 신조, 즉 '테넷'이 세상과 인류의 방향성에 관한 인문학적 고민을 던진다.
 
   이처럼 <테넷>은 사회적 문제에 관한 의제를 함의하고 있는 한편, 시간 역행, 쌍둥이 역설 등 기존의 SF 장르가 다루던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과학적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긴박한 액션 장면 속에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연출이 돋보인다. <테넷>을 여러 번 감상하며 숨겨진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길 권한다.
 


 
자연과학대학 학생기자단 자:몽 이준서 기자 kite174@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