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학의 한가운데에서, 2026 세계수학자대회를 가다
자연대 학생기자단 자:몽 9기 | 서성욱
지난 7월 23일부터 30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컨벤션 센터에서는 2026 세계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가 개최되었다. 국제수학연맹(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ICM은 세계 각지의 수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수학계 최대 규모의 학술 행사이다. 특히 개막식에서 필즈상을 비롯한 주요 수학상이 수여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22년 ICM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당초 예정됐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개최가 취소된 뒤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번 대회는 2018년 이후 8년 만에 세계의 수학자들이 다시 대면으로 모이는 ICM이기도 했다. 동시에 미국도 전쟁을 일으켰는데 왜 미국에서의 개최는 취소되지 않았는지 의문을 표시하는 수학자들도 적지 않았고, 최근 미국의 외교정책에 더해 프랑스는 수학회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참가를 하지 않겠다는 발표까지 했었다. 게다가 필즈상 수상자 공개 며칠전 수상자 명단이 유출되는 등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필자 역시 수리과학부 학부생으로서 처음 ICM에 참가해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긴 등록 행렬 끝에서 시작된 ICM
ICM 공식 개막 전날인 7월 22일 오후 6시 무렵부터 필라델피아에는 많은 수학자들이 도착해있었다. 필자 또한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일행과 함께 펜실베이니아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이날 저녁 예정된 Welcome Reception에 참여하려면 먼저 참가자 배지를 발급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026 ICM이 진행된 펜실베니아 컨벤션 센터의 입구. (사진 = 서성욱 기자)
배지를 받으려는 참가자들의 행렬은 이미 건물 입구 밖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줄을 서 있던 중 앞쪽에 있던 포스텍 학부생들과 우연히 인사를 나눴다. 필자는 등록비와 항공료, 숙박비를 직접 부담했지만, 포스텍에서는 올해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선발해 ICM 참가를 지원하고 교수진과 함께 학술·문화 일정을 진행했다.
Welcome Reception은 컨벤션 센터 바로 옆, 필라델피아의 유서 깊은 시장인 Reading Terminal Market에서 진행됐다. 시장 전체가 ICM 참가자들을 위한 리셉션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여러 가게의 음식을 무료로 맛볼 수 있었고, 처음 만난 연구자들이 인사를 나누거나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반갑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도착한 수 천 명의 수학자들이 시장의 통로를 가득 채운 광경은 그 자체로 ICM의 규모를 실감하게 했다.

Welcome Reception이 진행된 Reading Terminal Market. 내부는 미국식 파티장을 옮겨놓은 듯 중간중간 서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테이블이 놓아져있었다. (사진 = 서성욱 기자)
8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세계의 수학자들
7월 23일 아침 열린 개막식에서는 ICM이 국가와 언어, 정치적 갈등을 넘어 수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행사라는 점이 거듭 강조되었다. 2022년 대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생각하면, 수천 명의 연구자가 같은 공간에 모여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더욱 특별했을 것이다.
개막식 이후에는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을 소개하는 Laudation 강연이 이어졌다. 수상자의 이름을 발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으며 그 결과가 각 분야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른 연구자가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필즈상의 명성은 익숙했지만, 수상 업적의 수학적 맥락을 직접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필자에게도 필즈상을 하나의 상징이 아니라 실제 연구의 결과로 바라보게 한 시간이었다.
23일 저녁에는 고(故) Jim Simons를 기리는 Reception Honoring Jim Simons가 열렸다. Jim Simons는 뛰어난 수학적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Simons Foundation을 설립해 수학과 기초과학 연구를 오랫동안 지원한 인물이다. 그가 2024년 세상을 떠난 뒤 열린 이번 리셉션에서는 그의 연구와 수학계에 대한 공헌을 함께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후에도 개최지인 미국의 수학회가 주최한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Reception 등 여러 행사가 이어져 강연장 밖에서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AMS Reception에서 말을 전하는 라비 바킬(Ravi Vakil) 미국수학회장. 그의 대수기하학 교재 『The Rising Sea』는 수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읽힌다. (사진 = 서성욱 기자)
새로운 필즈상의 탄생과 수학의 최전선
개막식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순간은 역시 2026년 필즈상 수상자 발표였다. 올해 필즈상은 유 덩(Yu Deng), 존 파든(John Pardon), 제이콥 치머만(Jacob Tsimerman), 홍 왕(Hong Wang) 네 명에게 돌아갔다. 이와 함께 Shayan Oveis Gharan이 IMU Abacus Medal을, Yurii Nesterov가 Gauss Prize를, Graeme Segal이 Chern Medal을, Hannah Fry가 Leelavati Prize를 수상했다. 필즈상이라는 수학사의 한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새롭게 쓰이는 순간을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은 학부생인 필자에게도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2026년 필즈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유 덩, 존 파든, 제이콥 치머만, 홍 왕. (사진 = 서성욱 기자)
최근 몇 번의 ICM에서 필즈상은 개최국의 원수가 직접 수상하는 것이 관례였다. 2014 서울 ICM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필즈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필즈상은 현 IMU 회장인 나카지마 히라쿠 교수가 수여하였다. 이 모습은 몇몇 사람에게 그렇게나 정치적 갈등을 뛰어넘는 수학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뵙게 된 전 대한수학회장이자 IMU집행위원인 금종해 교수로부터 IMU에서 현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를 초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미국에서 개최됨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중국의 수학자들에게는 공정하게 상이 돌아가고, 오히려 이를 불편해할 수도 있는 국가의 원수를 초대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하게 시대적 갈등과 국가를 뛰어넘는 국제수학커뮤니티를 엿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물론 ICM의 중심에는 수학 강연이 있었다. ICM에서는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넓은 청중을 대상으로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최신 연구의 큰 흐름을 소개하는 Plenary Lecture(기조 강연)부터 각 세부 분야의 중대한 최신 연구를 다루는 Section Lecture(초청강연), 약 20분 동안 짧게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Short Communication까지 수많은 강연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렇게 3가지 종류로 발표를 나누어 진행하는 것은 ICM의 오랜 전통으로, 특히 기조강연이나 초청강연의 연사로 선정되는 것은 수학자에게 있어 더없이 큰 영광 중 하나이다. 관심 있는 강연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매 시간 어떤 강연을 들을지 고민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Short Communication은 질문 시간을 제외하면 1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연구의 배경과 핵심 결과를 모두 설명해야 했다. 발표자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말하고 슬라이드를 넘겼으며, 해당 분야를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청중이 내용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문제가 현재 연구되고 있는지, 서로 다른 분야가 어디에서 만나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기조강연에서도 인상적인 강의가 매우 많았다. 기하학적 랭글랜즈 추측의 증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데니스 게이트고리(Dennis Gaitsgory) 교수는 「Local and Global Langlands Conjecture(s) Over Function Fields」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기하학적 랭글랜즈와 고전적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관계를 비교적 넓은 관점에서 설명했고, 고전적인 랭글렌즈 프로그램을 ‘선사시대적’이라고 표현하고, 비교적 최근의 아이디어들을 ‘3차 산업혁명적’이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인 강연이었다.
대형 강연이 끝난 뒤에는 청중이 강연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별도로 마련되었다. 필자는 게이츠고리 교수에게 랭글랜즈 프로그램을 공부하는 학부생이 스택 이론을 어떤 자료로 공부하면 좋을지 질문했고, 이에 직접 이메일로 좋은 자료가 있는 사이트를 보내주기도 하였다. 논문에서만 보던 연구자에게 직접 공부 방향을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형 학회가 아니었다면 좀처럼 얻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Higer Topos Theory의 저자로도 유명한 제이콥 루리(Jacob Lurie) 교수는 「Prismatic Stable Homotopy Theory」라는 제목으로 현대 대수기하학과 호모토피 이론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소개했다.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강연이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던 여러 코호몰로지 이론과 호모토피 이론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연결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수론 분야에서도 다양한 최신 연구가 소개되었다. Jennifer Balakrishnan 교수는 Kim-Chabauty 방법을 이용해 대수곡선의 유리점을 연구하는 내용으로 초청강연으로 진행했다. 이때 Kim이 한국인 수학자이신 에든버러 대학의 김민형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다른 강연에서는 모듈러성 정리를 genus가 3의 배수가 아닌 일부 곡선들에 대해서도 확장하는 연구와 제타함수에 관한 밀도 가설(Density hypothesis)의 아델적 유사물 등이 다뤄졌다. 해당 강연에서는 발표자가 피터 사르낙(Peter Sarnak) 교수의 초기 연구와 그의 이름이 붙은 추측들을 설명했는데, 당사자인 사르낙 교수가 강연장 뒤쪽에 서서 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발표자가 “이 추측은 사르낙 교수가 처음 제시했는데, 지금 바로 뒤에 서서 보고계십니다”라고 말하자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Valentin Blomer 교수의 초청강연 중 일부. 사르낙의 밀도 추측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강연장의 가장 뒷편에서는 사르낙 교수 본인이 강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 = 서성욱 기자)
같은 강의에서 수학계의 전설인 피에르 들리뉴(Pierre Deligne) 교수의 업적을 설명하다가 그 역시 이번 발표에 와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모두 고개를 돌리며 들리뉴 교수을 찾기도 했다. 필자 역시 쉬는 시간 동안 그를 찾아다닌 끝에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들리뉴 교수에게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 잠시 자리를 피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는 3대 수학상인 필즈상, 아벨상, 울프상을 모두 수상한 단 다섯 명의 수학자 중 한 명이지만 같은 강연장에서 다른 연구자의 발표를 조용히 듣고 있는 한 명의 수학자이기도 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논문 속 참고문헌에 등장하는 연구자가 바로 같은 강연장에 앉아 후속 연구를 듣고 있다는 광경은 ICM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일 것이다.
이번 ICM은 한국 수학자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오희 교수은 「Dynamics and Rigidity Through the Lens of Circles」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하며 원과 군 작용을 통해 바라본 동역학계와 강직성 이론의 최신 연구를 소개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는 2014년 황준묵 교수의 기조강연 이후 두 번째 기조강연이다. 오희 교수는 대한수학회 8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칸-칼라이 추측의 해결로 유명한 박진영 교수, 2026년 호암상을 수상한 오성진 교수도 초청 강연을 진행하며 한국 수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ICM의 또 다른 화두, AI와 수학의 미래
이번 ICM에서 반복해서 등장한 또 하나의 주제는 인공지능이었다. 2006년 필즈상 수상자인 테렌스 타오(Terence Tao) 교수는 「Mathematics in the Age of AI」라는 제목의 대중 강연에서 AI와 형식 검증, 새로운 협업 플랫폼이 앞으로 수학 연구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다뤘다.
별도로 열린 AI 패널들에서는 현 미국수학회 회장인 라비 바킬 교수 등이 참가했으며, 수학 연구 과정에서 AI를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 연구 결과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AI가 교육과 젊은 연구자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테렌스 타오 교수의 대중강연. 엠 대쉬(em-dash)는 흔히 AI가 자주 사용한다고 알려져있는데, 해당 발표자료의 모든 엠 대쉬는 사람이 입력한 것이라 농담삼아 강조하고 있다. (사진 = 서성욱 기자)
AI에 관한 논의는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AI가 수학자의 연구를 보조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연구 결과의 검증과 저자성, 교육의 변화, 연구자 사이의 기술 접근성 격차 등 수학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IMU는 2026년 6월 발표된 ‘라이덴 선언(Leiden Declaration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Mathematics)’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이러한 문제를 수학계 전체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필즈상 수상자인 치머만 교수의 행보 역시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수상업적을 설명하는 필즈상 강연 말미에 예정된 수학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AI의 발전을 수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이야기했다. 이후 AI가 수학 연구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우려와 관심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기자회견에서는 OpenAI에서 AI 안전 연구에 참여할 계획도 공개했다. 특히나 이번 대회에서 수학계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필즈상 수상자의 이러한 발언들은 AI가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게 하였다.

치머만 교수의 필즈상 강연. 그의 이례적인 행보와 AI에 대한 발언들은 학회 내외부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사진 = 서성욱 기자)
Hall E, 강연장 밖의 또 다른 학회장
강연 사이에는 펜실베니아 컨벤션 센터의 Hall E가 일종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다. 이곳에는 Springer를 비롯한 출판사와 AMS, arXiv, wolframalpha 등 수학과 관련된 여러 기관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책을 살펴보거나 각종 스티커와 배지, 가방 같은 기념품을 받으며 쉬어갈 수 있었다. 학술 행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수학 관련 기념품을 하나씩 모으는 것도 학회 기간의 작은 재미였다.

Hall E에 있는 논문사전공개 사이트 arXiv의 부스. 필자는 해당 부스에서 얻은 파우치를 아직까지 잘 쓰고 있다. (사진 = 서성욱 기자)
Hall E 한쪽에는 Math Festival을 위한 다양한 수학 퍼즐과 체험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로 자녀와 함께 온 참가자들이 수학을 놀이처럼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었지만, 정작 퍼즐에 더 진지하게 빠져드는 쪽은 성인 수학자들일 때도 있었다. 특히나 한 미로 퍼즐 앞에 열 댓 명의 수학자가 모여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상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국립수학박물관(MoMath)에서 설치한 미로. 오른쪽의 입구에서 시작해 오직 직진과 우회전만을 통해 왼쪽 출구에 도착해야한다. 독자들도 시도해보기 바란다. (사진 = 서성욱 기자)
이곳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초청강연 연사이신 박진영 교수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Math Festival을 둘러보시던 중이라 말을 걸어도 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인사를 드리자 친절하게 대화를 나누고 사진 촬영에도 응해주셨다. 박진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동문이다.
책 속의 이름에서, 한 사람의 수학자로
학회의 본질은 새로운 연구 결과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난다는 것 역시 ICM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다. 지금껏 논문과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이름들이 강연장과 복도를 평범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존 수학자 중 가장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테렌스 타오 교수는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요청하는 참가자들에게 둘러싸이곤 했다. 2014 필즈상 수상자인 만주르 바르가바(Manjul Bhargava) 교수의 마방진에 관한 대중강연이 끝난 뒤 열린 만남의 시간에도 긴 줄이 만들어졌는데, 특히 인도 출신 참가자들이 여러 명씩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는 바르가바 교수가 인도 수학계에서 갖는 상징성을 느낄 수 있었다.
AMS Reception에서는 현 미국수학회 회장인 라비 바킬 교수를 만났다. 필자가 그의 대수기하학 교재 『The Rising Sea』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자 매우 고맙다 반응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배우기만 했던 저자와 실제로 대화를 나누고, 이후 이메일로 사진을 주고받는 경험은 무척 새로웠다.
필자는 이 밖에도 데니스 게이츠고리, 제이콥 루리, 피터 사르낙 등 여러 수학자와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유명한 연구자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도 기뻤지만, 더욱 기억에 남은 것은 그들이 학생의 질문을 듣고 자료를 추천하거나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논문 속의 이름은 쉽게 거대한 권위처럼 느껴지지만, 학회에서 만난 그들은 결국 질문하고 설명하며 다른 사람의 연구를 듣는 한 사람의 수학자였다.
한국 수학자들과 세대를 잇는 만남
이번 ICM은 한국계 수학자들의 발표가 많은 만큼 대한수학회 측의 참가자들도 다수 존재했다. 필자는 컨벤션 센터 입구에서는 금종해 전 대한수학회장을 만나 뵐 수 있었는데, 다른 한국 수학자들이 모여 있던 식사 자리에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자리에는 김도한 전 대한수학회장을 비롯해 여러 대학과 연구기관의 수학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한국과 국제 수학계를 경험한 연구자들이 들려주는 학계의 역사와 여러 일화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외에도 곽시종 대한수학회장을 비롯해 홍성금·노선숙 전 한국여성수리과학회 회장 등 여러 한국 수학자를 곳곳에서 만났다. 어느 날에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1963학번 선배부터 2019학번 대학원생, 2025학번인 필자까지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60년이 넘는 학번 차이를 지닌 사람들이 같은 강연을 들으러 이동하고 수학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학문 공동체가 세대를 이어간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나 한국인 수학자의 발표 때에는 이런 한국수학계의 원로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하였다.

오성진 교수의 초청강연. 해당 강연장에는 위에서 언급한 김도한, 곽시종, 금종해, 홍성금, 노선숙 교수 등 한국수학계의 원로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사진 = 서성욱 기자)
막연했던 수학 공동체를 눈앞에서
‘세계 수학계’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추상적으로 단어일 것이다. 세계 수학계의 구성원들을 논문에 적힌 저자의 이름과 유명한 정리, 교과서, 인터넷에서 보던 강연 영상의 형태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강연장을 오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막연했던 공동체가 실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도, 연구 분야도, 살아온 장소도 다르지만 재미있는 문제 앞에서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결과에 기뻐하며 수학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놀랄 만큼 비슷했다.
책과 논문 너머에 존재하던 수학의 세계를 직접 찾아가 보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세계 수학의 한가운데에서 보낸 일주일은 그렇게 필자에게 수학을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바라보게 한 시간으로 남았다.
자연과학대학 학생기자단 자:몽 서성욱 기자 seonguk06@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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