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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미술작가 KOHA 인터뷰

미술작가 KOHA 인터뷰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조현준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를 인식하고 주위를 본다면, 자연과학을 이용하거나 이를 소재로 차용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KOHA(하현수)는 자연과학과 미술을 접목한 작가 중 하나로, 2022-1학기 동양화과 과제전에서 생명과학을 소재로 한 [Phenotype] 연작을 선보였다. KOHA와 함께 그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Phenotype은 표현형을 뜻함.

KOHA(서울대학교 동양화과 하현수, @koha.art.co)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생물학적 자연현상을 통해 제국주의적 위계성을 띠는 인간 우월론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비판하고 인식을 환기하는 작업을 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21학번 하현수다. 최근에는 KOHA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KOHA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KOHA는 높을 고(高)와 물 하(河)에서 기인한 작가명인데,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물에서 헤엄치는 물개를 뜰채로 낚았던 태몽에서 연결된 작가명이다.

[Phenotype_05], Mixed media on wood frame, Dimensions variable, 2022, KOHA

동양화과 과제전에서 자연과학과 미술을 접한 작품들을 보면서, 하현수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번 과제전에서 선보였던 [Phenotype] 연작에 대해 짧은 설명 부탁드린다.

[Phenotype] 연작은 제목 그대로 표현형, 그러니까 생명체의 관찰 가능한 특징적인 모습이나 성질을 2차원 혹은 3차원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작업은 각각 자연과학적 법칙을 의미하는 그리드 내에서 구현이 된다. 모든 생물은 우연에 의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Phenotype] 작업을 할 때는 우연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을 했다. 모든 작업은 드로잉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이 되고, 3차원적으로 표현할 때는 우연적인 형태를 내는 발포우레탄이라는 재료를 사용했다. 또한, 작업마다 대주제 생물은 있지만, 이는 제목에 표현하지 않고 번호를 부여하였다.

자연과학의 개념을 예술에 접목하는 행위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편하거나 익숙한 방법론을 통해서 대화하고자 한다. 미술이 나에게 있어 편한 방식이었고, 자연과학적 주제가 익숙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연과학적 소재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현실적이고, 현실을 숭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주로 활용을 하고 있고, 과학 외에도 필요하다면 인문학적 소재를 끌어와서 사용하고 있다.
 

[Phenotype] 연작처럼, 자연과학 중에서도 생물학적인 내용을 소재로 많이 활용하는 것 같다. 다른 자연과학적 내용에서도 영감을 얻는가?

주로 현재로서는 작품의 주제로 다른 자연과학적 소재를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작업을 할 때 있어서 물리적으로 구현을 한다거나, 특수한 효과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 있다면 기술적 요소로는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과학 이외에서 영감을 받는 영역은 어디인가?

이번 작업을 하기 전에는 주로 역사적인 사건을 엮어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이 있다. 식민지 시기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에 대해서 작업을 많이 했다. 이외에도 군 문제 등 현실적으로 한국인으로서 겪는 문제들에 대해 많이 다루었다. 

[Invisible Man], Complex Ink on Jang-Ji paper, 2021, KOHA

[Invisible man]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다.

주로 이 시기에는 식민지 조선인 중에서도 조선 황실 인물의 포트레이트 사진들을 끌어와 모호한 형태로 왜곡시키는 작업을 많이 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선인, 그중에서도 이왕가라는 인물들은 사실 조선 왕실도 아니고 일본 왕실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 애매한 위치라는 그 지점이 식민지 조선인들의 위치를 대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토대로 작업을 진행했다.

과학자의 꿈과 미술가의 꿈 중 미술가의 꿈을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생물학자와 미술 작가라는 두 가지 직업을 꿈꿨다. 과학자와 미술가는 모두 자신의 견해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는 직업이고, 두 직업의 차이점은 논문과 작업이라는 매체다. 내 견해를 알리는 소통의 매체로 회화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미술가의 꿈에 끌렸다.

그렇다면 다양한 미술대학 내 전공 중 동양화를 전공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있나?

나의 작업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딱히 동양화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서양화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학술적으로 동, 서양화라는 분류가 동시대 미술이라는 범주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분류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시아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동양적 정서를 기반으로 커리어를 쌓아 올리려는 생각이 여기에 오게 만든 것 같다.

[16.0 x 12.0 cm의 표현형 공간],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each 16.0 x 12.0 cm), 2022, KOHA

곤충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과제전에서 선보였던 [16.0 x 12.0 cm의 표현형 공간]도 외골격을 석고로 본을 뜬 작품이다. 곤충의 어떠한 요소가 당신을 매료시키는가?

곤충은 비교적 작고, 생활주기가 짧고, 다량의 후손을 낳는다. 그로 인해서 지구상 어느 분류군보다 종 다양성이 풍부하고, 다양한 지역에서 서식하며, 계속되는 대멸종에서 살아남아 왔다. 곤충이라는 분류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역시 이런 다양성 때문인데, 예측 불허한 형태적 다양성이 그저 선택압에 의한 우연의 결과라는 것을 보며 경이로움에 압도되는 지점이 있다. 

다양한 곤충 표본도 모으고 있다. 얼마나 많이 모았나.

너무 많아서 수를 세 본 적은 없는데, 대략 만 점 정도를 수장(收藏)하고 있다. 채집과 경매를 통해서 주로 수집을 하고 있으며.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의 곤충 표본을 수집 중이다.

혹시 곤충 채집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가.

요즘 주로 수집하고 있는 뿔꼬마 사슴벌레 속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사슴벌레의 한 종이 제주도의 극히 좁은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10여 년 전부터 이 서식지가 관광지와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슴벌레의 서식 공간이 개발되어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현재는 수십 년 이내로 멸종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생태 사진과 기주목의 갱도를 입수하기 위해 올해도 몇 번이나 제주도를 갔다 왔는데, 서식지가 계곡이라 이끼 때문에 가파른 곳도 많고 뱀도 많아 위험한 곳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팽나무 폐목에서 두 마리의 개체를 발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외에도 수장 중인 개체의 개체 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감을 하면 높은 금액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사례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Phenotype_07], Mixed media on Cotton Canvas, 171.2 x 167.0cm, 2022, KOHA

본인의 작품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나?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작업 중에는 아무래도 [Phenotype_07]이 가장 애정이 간다. 인간을 주제로 한 작업이다. 인간은 으뜸을 뜻하는 라틴어 primus에서 기인한 primates(영장류)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인간은 그럴 만큼 월등한 존재가 아니고, 결국 인간도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월등한 생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잣대로 또 인간만의 편의를 위해서 지구를 남용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최근 작업의 큰 메시지 중 하나이다. [Phenotype_07]은 그 메시지에 가장 부합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애착이 간다. 그리고 인간을 동물로 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경우도 있다. 자신을 타자와 구분 짓고 위계화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속성은 비단 환경문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집단 내부에서도 보인다. 인종 차별, 성별 갈등과 같은 모든 문제에 관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작업에 있어서 고충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과학과 같이 보편적 진리를 지식화하는 학문을 토대로 작업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자칫 회화가 아닌 삽화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삽화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보여줄 수 있는 폭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평면 회화에서 극히 치명적일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주의해서 작업했다. 요즘은 작업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또, 작업할 때 있어서 비단이라는 동양화 재료를 사용할 때가 있다. 비단을 나무 틀에 일일이 풀로 붙인 다음 코팅을 한다. 작업하고 나서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마감재를 여러 번 도포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독특한 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재료 수급이 어렵고 작업이 노동 집약적이고 습도 변화에 대한 섬유 수축률의 변화가 커 이에 관한 연구를 더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당분간은 위의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다. 환경, 차별 문제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담론화될 부분이 많은 영역이고,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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