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영국 교환학생 수업 엿보기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5기 | 허은제



* 이곳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괄호 안에 원어로 표기하고, 한글 용어는 가능한 서울대학교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것으로 선택했다. 


들어가며

기자는 24년 봄,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왔다. 한 학기동안 런던 아래쪽에 위치한 서리대학교(University of Surrey)에서 수업을 들었다. 서울대학교 수업과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부분도 완전히 다른 경우가 있었다. 덕분에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기사를 통해 자연대 교환학생으로서 경험을 조금이나마 나누고자 한다. 기자가 다르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학기 구성과 평가(Assessment), 과목(Module) 구성, 출석과 강의자료 측면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들어가기 전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이 기사는 기자 개인의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교환학생 수업은 ~’,  ‘영국 대학교 수업은 ~’ 혹은 ‘서리대학교 수업은 ~’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려는 게 아니다. 또 두 학교를 비교하며 ‘어느 쪽이 더 낫다’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도 아니다.

같은 환경에 놓여도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한다. 각자가 선호하는 것, 추구하는 가치도 다를 것이다. 기사를 쓸 때 일반화와 주관적인 가치판단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 기사는 하나의 독립적인 사례일 뿐이다. 독자들이 이 기사를 가볍게 읽고, 대학 교육에 대해 넓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서리대학교 정문에 있는 마스코트. (사진= 허은제 기자) > 


0. 배경 정보 

기자는 물리천문학부 천문학전공 22학번이다. 이번 학기 서리대학교에서는 선형대수학(Linear Algebra),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s), 천문학 입문(Introduction to Astronomy), 핵과 입자 물리(Nuclear and Particle Physics) 이렇게 총 4개의 과목을 들었다.


1. 학기 구성과 평가

 서리대학교의 봄학기 강의는 11주차로 구성된다. 2월 첫째 주에 강의가 시작해 5월 둘째 주에 끝난다. 중간에는 3주간 봄방학이 있다. 마지막 강의를 마친 후 다음 한 주는 수업이 없는 복습 주간(Revision Week)이다. 이 기간 이후 3주간 시험 기간을 거치면 한 학기가 마무리된다.

< 서울대학교와 서리대학교의 봄학기 구성 비교. (표= 허은제 기자) >


 평가는 중간고사, 랩 또는 퀴즈, 기말고사를 합쳐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전체 점수의 40% 이상을 획득하면 통과(Pass)다. 100%~70%는 A, 69%~50%는 B 그리고 49%~40%는 C이다*. 

서울대학교에서는 대부분 과목이 중간고사를 봤던 것과 달리 서리대학교에서는 네 과목 중 두 과목만 중간고사(In-semester tests)를 봤다. 반영 비율도 각각 전체의 10%, 25%로 기말고사(Examinations)와 비교하면 사실상 작은 테스트에 가까웠다. 서울대학교에서 흔하게 있었던 격주마다 나오는 숙제는 대부분 없거나, 있더라도 성적에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에서는 과목별로 과제 제출 방식, 마감일, 지각 제출 처리 방식이 모두 달랐지만, 서리대학교는 과제(Coursework)를 제출하는 통일된 방식이 있었다. 전부 온라인 시스템(Surrey Learn)을 통해서 PDF 또는 WORD 파일로 제출하고, 기한은 항상 주중 오후 4시였다. 이틀 이내 지각 제출은 10% 감점, 5일 이후 제출은 0점, 이 사이 지각 제출은 최저점을 준다는 규정**이 모든 과목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기말고사의 경우 과목별 교수가 아닌 대학 본부가 시험 날짜를 정한다. 그래서인지 좁은 기간에 시험이 몰려 있지 않고, 3주 동안 총 4개 시험이 거의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었다.

*FHEQ 4, 5 and 6 Grade 기준, 대부분의 학부 과정 수업이 여기 해당한다.
**https://exams.surrey.ac.uk/assessment


2. 과목 구성
  

  한 과목은 일주일에 강의 2~3시간, 튜토리얼 1시간, 랩 2~3시간으로 구성된다. 강의는 교수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수업과 비슷하다. 튜토리얼은 진행된 강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이하는 시간이다. 핵과 입자 물리 랩, 천문학 입문 랩은 각각 서울대학교의 물리학 실험, 천문학 실험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강의가 진행되는 방식은 서울대학교와 유사했지만, 분위기가 조금 더 자유롭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보통 친구와 하는 대화를 강의 도중 교수와 주고받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한 수업시간에 일어난 상황을 간단히 재현하자면 아래와 같다.

 < 강의 중 학생과 교수의 대화. (그림= 허은제 기자) > 


튜토리얼은 과목 구성상 서울대학교의 ‘역학1 연습’ 정도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진행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제공된 문제를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유롭게 풀고 교수와 조교는 돌아다니면서 질문을 받아주었다. 보통 친한 학생들끼리 뭉쳐 논의하기 때문에 분위기는 꽤 시끌시끌했다. 마치 56동 건물에 있는 물리천문학부 해동에서, 혹은 과제 마감 한두 시간 전 과방에서 교수와 조교가 돌아다니며 공부를 도와주는 것 같았다.

랩 수업은 서울대학교와 비슷하게 랩 노트와 보고서, 발표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실험을 진행할 때 조교뿐 아니라 실험실 담당자와 교수도 실험실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3. 출석과 강의자료

 출석과 강의자료는 두 학교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꼈던 부분이다. 서리대학교는 출석이 필수가 아니다. 교수가 따로 출석을 확인하지 않으며, 성적에 출석이 반영되지 않는다. 수업일수의 1/3 이상을 초과하여 결석해도 문제가 없다. 다만 매시간 교수가 출석 코드를 제공하고, 학생이 앱에 코드를 입력하면 출석이 확인되는 방식으로 출결 상황을 모니터링만 한다.

출석이 강제가 아니므로 강의실에 꼭 가지 않아도 된다. 강의는 가지 않고 튜토리얼 시간만 가거나 그 반대도 가능하다. 강의실에 가면 보통 첫 수업 때 인원의 절반 정도만 있다. 다만 그룹으로 진행하는 랩의 경우 출석이 필요하다. 만약 특정 실험에 참여하지 못하면 따로 보강 주에 그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그럼 출석하지 않은 강의는 어떻게 공부할까? 온라인 시스템에 올라오는 강의자료를 이용하면 된다. 모든 강의에서 PPT와 핵심 내용을 요약한 강의 노트, 튜토리얼 문제와 답안지를 제공했다. 4개 강의 중 2개는 강의 현장을 녹화한 영상과 함께 교수가 따로 촬영한 강의 영상을 매 수업 직후 바로 업로드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따로 촬영한 강의 영상을, 다른 하나는 강의 PPT를 올려주었다. 거의 모든 영상에 자막이 제공되고 배속 조절이 가능했다.

< 강의 현장 녹화 영상을 볼 수 있는 사이트의 스크린샷. 왼쪽 위는 교실 영상, 오른쪽 큰 화면은 PPT영상이다. (사진 = 허은제 기자) >


‘출석을 안 해도 평가상 감점이 없다’가 아니라, 강의실에 나오지 않아도 공부하는 데 있어 지장이 없도록 학교가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의실에 갈지 말지를 고민할 때 적어도 학교가 주는 압력은 없었다.


정리
  

학기 구성과 평가 부분에서 서리대학교는 서울대학교와 달리 절대평가를 실시했고, 강의자의 재량과 대학 시스템을 저울질할 때 서울대에 비해 후자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과목 구성 중 강의와 랩의 진행은 큰 틀에서 서울대학교와 다르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조금 더 자유롭고 랩 진행 시 실험실 책임자와 교수가 실험실에 같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튜토리얼 시간은 교수와 조교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는 서울대학교에서 기자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업 방식이었다.

출석이 자율적이라는 측면에서 출석이 성적에 반영되고, 따로 F 규정이 있는 서울대학교와는 크게 달랐다. 강의자료의 경우 강의실에 출석하지 않은 학생도 출석한 학생과 동등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가며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서울대학교 수업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출석과 같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부분들이 다른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조금 익숙해지니 바뀐 환경의 장점이 크게 보였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그 장점이 다시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학기 시작 후 처음 두 주 정도는 관성적으로 강의실에 갔다. 여행을 다니며 한두 번씩 빠지기 시작할 때까지도 출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강의실에 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스스로 갈 필요성을 느끼는 수업만 들으러 갔다. 훨씬 효율적으로 느껴졌다. 봄방학 이후에는 출석률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학기 말이 되니 직접 가서 수업을 들어야지만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 아쉬워졌다. 친구들과의 대화, 교수님께 직접 하는 질문, 매주 꾸준히 나가는 진도 등등.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건 애초에 출석이 자율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동시에 던져줌으로써 학생들이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더 깊게 고민하고 그래서 더 많이 배워갈 수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그렇게 고민하며 헤매다보면 길 하나를 따라가는 사람보다는 느리고, 어쩌면 영영 떠돌 수도 있지만.

서리대학교 학생들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이 헤맬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육 방식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설령 결론을 낼 수 있다 한들 그 역시 기자 개인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다만 기자는 두 선택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이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내면서 교육이, 더 나아가 삶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 차원 위에서 다양함을 깨닫는다. 삶의 가짓수 뿐 아니라 삶의 방법도 무한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먼 타국에서 우리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새롭게 다시 배운다.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5기 허은제 (ejherr@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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