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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 자몽 시리즈: 연구, 어떻게 하지?] 2. 연구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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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7기 | 유주상

  [2024 여름 자몽 시리즈: 연구, 어떻게 하지?]에서 두 번째로 만난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의 한 연구실에서 수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다. 8월 16일, 무더운 여름 날씨 속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구를 ‘사업’이라고 표현한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A. 쌍곡기하학¹⁾을 기반으로 실수 사영 구조(real projective structure)라는 기하학적 구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2차원 다각형에 사영 공간 구조를 부여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을 “표현(representation)”이라고 하는데요. 다각형에서 어떤 행렬 군으로 가는 표현이 있는데 저는 그 행렬 군 중에서 SL(3, R)²⁾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SL(3, R)에서 각 원소가 정수인 정수점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정수론과 기하학을 연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1) 쌍곡기하학: 곡률이 음수로 일정한 공간에서 성립하는 기하학
2) SL(3, R): 3x3 행렬 중 행렬식이 1인 각 원소가 실수인 행렬

Q. 특별히 이 주제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원래부터 기하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하학을 연구하고 싶었는데요. 처음에는 대수학을 활용한 기하학보다는 미분기하학을 연구하고 싶었고, 그에 맞는 지도교수님을 찾고자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미분기하학을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많지 않아 KAIST에 계신 교수님과 컨택을 했었는데 그 교수님께서 해석학이나 편미분방정식을 먼저 공부한 후에 기하학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서울대학교 내 기하학을 연구하시는 교수님 밑에서 연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존에 접해보지 않았던 기하학 분야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연구분야가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은 교수님의 연구와 관련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데 박사를 졸업하면 그때는 다른 분야의 연구가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수학을 연구하시는 연구원으로서 전반적인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A. 보통 10시 정도에 학교에 옵니다. 저는 세미나가 일주일에 4번 있어서 세미나가 있는 날에는 세미나 전에 관련한 내용을 랩실 사람들께 물어보거나 레퍼런스를 읽은 후에 세미나를 듣고 연구를 좀 하다가 집에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보통 연구를 오래 하지는 않아요. 세미나가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표가 있는 주에는 조금 더 바쁩니다.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교수님을 많이 만나 뵙지 못했지만 원래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보냅니다.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 이전에는 듣고 싶은 강의를 청강하기도 하였습니다.
  세미나 시간에 발표는 예전에는 자기가 발표하고 싶은 주제의 논문을 정해서 그 논문을 설명하는 것을 주로 했습니다. 훗날 수학 학회에 나가 발표하는 것을 연습하는 차원이죠. 지금은 리딩 세미나라고 책에 있는 내용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세미나가 진행됩니다. 이런 세미나가 있으면 하루가 조금 더 바빠지죠.

Q. 수학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최근에 수학 연구는 종이와 펜만으로 이루어진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도 많다고도 들었습니다.

A. 우선, 교수님들이 학회에서 발표하시는 내용을 듣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 주제에 관한 영감을 얻습니다. 저는 연구 초년생이라 스스로 문제를 찾는 요령이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컴퓨터를 활용하며 연구를 진행하는데요, 제가 하는 연구가 계산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Python이나 Mathematica를 사용하면서 연구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증명해야 하는 명제를 도출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지금 연구하시는 분야 이외에도 수학에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다른 분야에서도 컴퓨터가 연구에 필요한가요?

A.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는 정적분과 부정적분이 전혀 다른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그 두 개를 연결한 정리(Theorem)잖아요. 그런데 이런 정리를 생각하고 직관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계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적분과 부정적분의 결과가 일치하는 사례를 계산을 통해 알아냈기 때문에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은 연구 초년생일수록 어려운 문제를 풀 때 계산하면서 직관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계산을 못하면 이런 직관을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회에 가면 뛰어난 연구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이분들도 계산을 잘하기 때문에 직관 능력이 뛰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Q. 연구하는 시간에 연구 이외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A. ‘이걸 풀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좀 오랫동안 안 풀리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 빨리 반례를 찾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웃음)

Q. 연구를 진행하다가 막히는 순간에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나요?

A. 우선 믿음을 가지고 진행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진행함에도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잘 풀릴 것 같다고 생각해도 예상치 않게 막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렇게 막힐 때에는 보통 다른 분야의 수학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그 공부가 기존에 하던 공부와 연관 없어 보일 수는 있어도 그런 곳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진짜 연구가 안 되면 잠깐 쉬어 가는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할 수는 없잖아요.
  또는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연구원한테 조언을 얻기도 합니다. 근데 사실 제가 막힌 부분을 다른 분께 물어보면 보통 다른 사람들도 잘 몰라요.(웃음) 그렇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사람마다 보는 관점과 이전에 배웠던 내용이 다 달라서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다른 분께서 제가 막힌 내용과 관련된 논문을 추천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 논문의 내용을 공부하기도 합니다.

Q. 연구실 환경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해주세요.

A. 간단하게 말하면 독서실 느낌입니다. 연구실에 독서실 책상이 있고 그 책상에서 각자 공부를 하는 모습이 주된 모습입니다. 노트북도 각자 개인 노트북을 사용하고요. 분위기는 서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긴 하지만 대개 조용한 독서실의 분위기입니다.
  같은 연구실에 계시는 분들과는 대화도 자주 하고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연구실 안에서는 주로 모르는 게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답해주는 대화가 오고 갑니다.
  
  

수리과학부 연구실의 모습. (사진 = 유주상 기자)
  
  

Q. 통계학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수리과학부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얼마 전에 통계학과의 이권상 교수님께 두 변수 간 상관관계가 있다는 조건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상관관계계수라는 개념을 언급하셨는데, 사실 통계학에서는 상관관계계수가 몇 이상이면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이 정도면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잖아요. 그에 반해 수학은 반례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수학이 조금 더 빡빡한 느낌이 있어요. 리만 가설이나 골드바흐 추측 같은 경우도 현재까지 계산된 범위에서는 모두 참으로 확인되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제를 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수학은 실패한 경우에 대해서 논문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아예 모든 경우에 대해서 수학적 언어로 증명을 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통계학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연구자가 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엇인가요?

A. 항상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의 공부는 답이 다 나와 있었기 때문에 모르면 찾아보면서 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연구는 풀릴지, 안 풀릴지도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항상 머릿속에 어떻게 풀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분야의 연구원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연구하는 분야가 나중에 인류나 다른 학문에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도움이 되는 게 특별히 없다면 그럼에도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제가 하는 연구가 지금 당장 어딘가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연구가 다른 분야에 쓰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교수님께서 “지금 하고 있는 수학은 22세기를 위한 수학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교수님의 말씀처럼 당장은 쓸모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쓸모 있고 유용한 부분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연구자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긍정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가끔 답답한 경우가 있어요. ‘이걸 내가 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요. 그 상태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거든요. 연구가 잘 안 돼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없으면 연구하기는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

Q. 기업이나 연구소 대신, 학교에 남아 연구를 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이게 수학의 특수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수학을 기업에서 배울 수는 없잖아요. 연구소에 들어가려면 박사 과정 이상은 돼야 하기도 하고요. 기업 연구소에 간다고 해도 수학을 연구하기보다는 기업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데 저는 수학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학교에 남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을 졸업한 이후에도 학교에 남아서 연구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사실 그냥 수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서 박사 후 연구원을 어디에서 하든지 간에 수학 공부를 하는 게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Q. 꿈이 있으시다면?

A. 요즘 사람들은 “꿈이 뭐냐?”라고 물어보지 않고 “돈이 많으면 뭐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그럴 때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대답합니다. 어렸을 때는 “꿈이 뭐냐?”라고 하면 수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요즘은 돈이나 연구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있게 수학 공부하는 것이 꿈입니다.

Q. “연구는 OO이다.” 에서 빈칸을 채운다면?

A. 연구는 '사업'이다. 연구라는 것이 마치 1인 창업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스스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과정이 사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던 것 같아요. 어떤 것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개인의 아이디어를 사회에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사업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수학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도전하는 그의 자세는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연구자의 본질적인 마음가짐을 잘 보여준다. 연구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하게 수학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의 꿈을 응원한다.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유주상 기자 statant@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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