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드의 과학: 어떻게 고기를 '이븐'하게 익힐 수 있을까?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7기 | 강현재

진공팩에 담긴 연어를 수비드 기구를 이용하여 수비드를 진행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Ricardo Cuisine)
음식의 식감을 높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각각의 조리법에는 숨겨진 과학적 원리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고기 등을 조리할 때 이용되는 요리 기법, ‘수비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혹시 다른 요리 기법인 마이야르 반응의 과학적 원리가 궁금하다면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https://science.snu.ac.kr/newsroom/view/2/11/1075))
수비드(Sous-vide)는 프랑스어로 “비어 있는 상태(vide) 아래에서(sous)”라는 뜻으로, 진공 상태를 의미한다. 수비드는 1799년 영국의 벤자민 톰슨(Benjamin Thompson) 백작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으나 당시에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구현이 어려웠다. 이후 1971년에 프랑스 요리사 브뤼노 구소(Bruno Goussault)에 의해 현대 수비드 조리법이 완성되었고, 이것을 통해 조리된 푸아그라와 같은 요리들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면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수비드로 고기를 조리하는 영상을 보면 재료를 진공팩에 담는 장면이 보이는데, 이렇게 진공 상태가 된 식재료를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수조에 담아 장시간 보관하면 수비드가 진행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수비드를 거치는 동안 일정한 수온과 진공이 어떠한 반응이 일으키는지 과학적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1. 수비드의 특징
수비드의 가장 큰 장점은 '식감의 유지'이다. 고온으로 식재료를 조리하면 본래 저온일 때와는 식감이 아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비드는 일반적인 가열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수비드의 또 다른 명칭은 LTLT(Low Temperature, Long Time)로,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수비드는 물에 담가 놓는 방식으로 가열 및 온도 유지를 하기 때문에 육류나 야채류를 원하는 식감으로 조리할 수 있다. 이러한 식감 유지의 원리는 식재료의 종류의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2. 육류의 수비드 - '단백질의 변성'
육류의 수비드 반응에서 중요하게 지켜봐야 할 단백질은 크게 미오신, 콜라겐, 액틴이다. 미오신과 액틴은 고기의 근육을 구성하는 주요 단백질이며, 사람의 근수축 과정에서 서로 맞물려 작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먼저 53~54℃에서 육류 전체에 걸쳐 미오신의 변성이 관찰되었고, 콜라겐 역시 58℃ 이상에서 구조적 변화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변화는 단백질 구조를 형성하는 수소 결합이 끊어지면서 발생한다. 이렇게 변성된 미오신과 콜라겐이 근섬유 내부에 침착되며 부드러운 젤이 형성되는데, 이를 '젤라틴화(gelatinisation)'되었다고 한다. 젤라틴화가 진행된 고기는 먹었을 때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미오신과 콜라겐은 부드러운 육질 형성에 기여하는 반면, 액틴은 반대로 질긴 식감을 형성한다. 액틴의 변성 온도는 약 68℃로, 변성 온도를 넘어가면 액틴이 쪼그라들며 섬유 수축이 전체적으로 일어난다. 이로 인해 질긴 식감이 강화되며, 수비드된 고기 특유의 부드러운 육질이 망가져 버린다.
따라서 육류를 수비드시킬 때는 일반적으로 온도를 55~65℃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온에서는 수비드 반응이 잘 진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가 없이도 잘 증식하는 혐기성 식중독균이 번성할 수 있고, 고온에서는 앞서 설명한 이유로 자칫하면 육질이 질겨질 수 있다

수비드를 진행한 온도에 따른 육질의 익힘 정도. (이미지 출처 = Serious Eats)
3. 야채류 및 과일류의 수비드 - '세포벽의 약화'
야채류의 수비드는 육류보다 훨씬 높은 85℃의 온도에서 일반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적정 온도의 차이는 육류와 야채류의 구조적 차이에 따른다. 식물 세포는 동물 세포와 달리 셀룰로스 등으로 구성된 단단한 '세포벽'이 존재하며, 그 견고함이 세포의 모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이 세포벽을 약화시키는데 요구되는 최소한의 온도는 약 82℃로 알려져 있다. 적정 온도에서 수비드를 진행한 야채류 및 과일류는는 단단한 식감에서 무른 식감으로 변하는데, 예를 들어 당근의 경우 '잘 휘어지는(bendy)'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즉, 수비드가 진행되며 육류는 단백질의 구조가 변형되고, 야채류 및 과일류는 세포벽 구조가 약해진다. 그 결과 식재료의 식감이 부드러워 진다고 할 수 있다.
4. 수비드의 적정 온도 - 그래서 몇 도가 적당한데?
아래의 표는 식재료의 종류와 그 익힘 정도에 따른 적정 수비드 온도를 나타낸 것이다. 육류, 야채류, 과일류뿐 아니라 해산물이나 달걀의 수비드 온도도 표시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육류와 비슷한 온도에서 수비드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식재료의 종류 및 익힘 정도에 따른 적정 수비드 온도. (이미지 출처 = SousVideSupreme)
지금까지 수비드의 원리와 각각의 적정 온도를 알아보았다. 미디어에서 셰프들이나 요리 유튜버들이 구사하는 여러 요리 기법이 사실은 과학의 토대 위에서 성립하는 기술들임을 알 수 있다. 매일 먹는 집밥에도, 어쩌다 한 번 가는 파인 다이닝 디쉬에도 요리의 ‘과학’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참고자료
MICHELIN Guide, 수비드(sous-vide)란?https://guide.michelin.com/kr/ko/article/features/%EC%88%98%EB%B9%84%EB%93%9Csous-vide%EB%9E%80
America's Test Kitchen, Science: Why Sous Vide is Perfect for Cooking Vegetables.https://www.americastestkitchen.com/cooksillustrated/articles/1141-science-why-sous-vide-is-perfect-for-cooking-vegetables
Elisa Dominguez-Hernandez, Alvija Salaseviciene, Per Ertbjer. Meat Science, Volume 143, 2018, pp. 104-113
Mike Boland, Lovedeep Kaur, Feng Ming Chian, Thierry Astruc. Encyclopedia of Food Chemistry, Academic Press, 2019, pp. 164-179.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강현재 기자 hgang35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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