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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겨울 자몽 시리즈] 06. 화석연료 사용과 기후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

빈문서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5기 | 주정원

0. 환경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날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고도로 발달한 기술의 결과를 실감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기술의 비약적 발전의 시작은 18~19세기에 있었던 산업혁명이라고 흔히 여겨진다. 그리고 산업혁명에 큰 공헌을 한 발명품은 증기 기관, 즉 땔감으로 물을 끓여 생기는 증기로 작동시키는 기계 덕분이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산업 혁명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환경 문제를 새로이 만들어 내고 심화시켰다.

 당시 증기 기관에 쓰인 연료는 석탄이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증기 기관이 공장과 발전소, 내연기관 등에서 이용되었다. 석탄은 가정 난방에도 이용되었다. 하지만 석탄은 연소되면 이산화탄소, 수증기와 함께 질소산화물, 황산화물이 나온다. 증기 기관과 석탄이 더 많이 이용될수록 도시에는 매연이 늘어갔고, 대기 중에는 온실 가스가 늘어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1952년의 런던에서 발생한 ‘그레이트 스모그’다. 스모그는 매연(smoke)와 안개(fog)가 합쳐진 것을 이르는 말로, 당시 런던의 생명체들은 호흡할 때 황산을 들이마시게 되어 호흡기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것은 환경 오염 내지는 환경 파괴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 직접적 사례였다. 현재에도 선진국 시민들은 지구 곳곳의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피해를 목도하며, 그 원인이 인류가 환경에 과도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대개 여긴다.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서 지질학적 변화가 생긴 시기를 표현하는 ‘인류세(世)(the Anthropocene)’라는 개념도 등장했고, 이제는 석탄, 석유, 천연 가스 등의 화석 연료 대신 태양과 바람, 지열 등을 이용하는 재생 에너지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증기력의 이용으로 인한 기술 발전과 환경 문제의 심화,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논의는 종종 그것을 가능케 한(할) 과학 기술에 집중된다. 기술 발전이 문제라거나 기술 발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말름이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에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증기력이 선택되고 환경 문제가 심화된 것은 기술 발전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도리어 자본 증대라는 목적 하에 이루어진 사회적 사건들 속에서 발생한, ‘바꿀 수 있는’ 일들이다. 그는 또한 에너지 전환을 자본에게 맡겨두어서는 안 되며, 대중운동을 통해 사회적 권력들이 전시 상황과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화석 자본”의 이익에 반하는 에너지 전환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다른 책인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21세기 생태사회주의』에서 이것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말름이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에서 제시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면직업 공장에서 이용하는 에너지가 왜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인류세’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적절한지, 탄소 포집 등 ‘지구 공학’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이른 미래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름의 분석과 주장을 소개한다. 오늘날 환경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하의 인용은 별도의 표시가 없으면 안드레아스 말름,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에서 인용한 것이다.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의 표지. (이미지 = 위대현)

1.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전환한 공간적 이유
 

 말름은 증기 기관이 영국 면직업에 이용되는 기계의 동력장치로 처음부터 각광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장주들은 강변에 공장을 세우고 수력을 이용해서 기계를 가동하고 있었으며, 증기 기관을 가동하려면 석탄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물 사용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임대차 계약이 필요했다. 그러나 로버트 고든의 연구에 따르면 수력을 이용한 면직업이 충분히 성장한 1838년에도 하천의 이용률은 대부분 5%를 넘지 않았다. 때문에 면직업 공장주들은 수력을 이용하는 것이 수력 발전 장치를 설치하는 비용까지 고려하더라도 더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공장주들이 수력 대신 증기 기관을 쓰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름은 주장한다. 하나는 공간적 이유, 다른 하나는 시간적 이유이다.

 - 물가의 공장에 일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

 수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공장이 물살이 센 곳에 자리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곳은 대개 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다. 때문에 수력을 동력으로 삼는 기계를 이용하는 공장주들은 공장 주변에 거주시설과 시장, 주점(pub), 텃밭 등을 배치하여 공장 정착촌을 조성했다.

 공장제도 하에서 노동자들은 (수력으로 가동되는) 중앙 원동기의 작업 속도에 맞추어, 신호에 따라 일을 시작하고 멈추어야 했으며 작업 현장의 감시자들과 공장주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농업, 장인의 제조업과 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이 일하는 전통적 문화에 익숙했기에 대부분이 이러한 공장 규율에 크게 반발했다.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대안으로 실현된 것은 교구 위탁 아동(parish children), 즉 교구의 구성원들이 도제(apprentice)로 고용하던 부랑자와 사생아, 빈곤 가정의 아이들을 공장에 넘겨 강제 노동을 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공장주들에게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동에게 주어져야 하는 의료, 숙소, 기초교육 등을 공장주가 책임져야 했으며, 도제가 숙련된 방적공이 되면 도망치는 일이 생겼으며, 이들은 임금을 받지 않았으므로 노동하려는 의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임금노동자였다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즉 공장주 입장에서도 임금노동하는 자유로운 노동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자유로운 노동자를 모으기 위해 공장주는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공장 정착촌을 쾌적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한편에는 사람으로 가득한 헛간 기숙사가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는 테라스가 딸린 깨끗한 오두막이 있었고, 강제 아동노동과 느긋한 자유 임금노동이 동시에 존재”했다. 노동자들에게 정착촌을 제공하는 것은 노동자가 저항했을 때 잃게 되는 것을 늘린다는 점에서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임금 인하에 항의하거나 인상을 요구하며 벌어진 파업과 폭동으로 정착촌이 훼손되는 일이 생겼고, 그것은 공장주의 손해로 이어졌다. 게다가 만약 공장주가 대량해고를 한다면 노동자를 마을에서 물가의 공장으로 데려오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대량해고 역시 어려웠다. 수력과 정착촌을 이용하는 공장주는 노동자 개인을 통제하기에는 유리했으나  노동자 집단을 상대하기에는 불리했던 것이다.

 - 물가가 아니라 도시에 노동력이 풍부하다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결정적인 전환이 벌어지기 직전에 영국에서는 도시화가 폭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고, 도시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가 도시 인구를 견인하였다.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숙련도를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한 것이 아니라 아무 비숙련 일자리나 얻기를 원했고, 노동력 수요가 많은 곳을 찾아 도시로 온 것이었다. 도시는 수력을 이용하는 공장과 그 정착촌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도시에 도착한 이주자들은 정착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도시가 제공하는 다양한 일자리 중 하나를 얻기를 원했다. 유흥가와 같이 도시 생활이 주는 매력도 사람들을 도시에 남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로부터 말름은 1825년 전후에 도시에 사람이 몰리게 된 다섯 가지 요인을 설명한다. 첫째는 도시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는 공장 노동이 이루어지는 사회에 익숙했으므로 공장 규율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역직기(동력 장치로 움직이는 베틀)가 도입되어 숙련도를 가진 손베틀 직조공이 해고되며 공장주가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늘어난 것이다. 셋째는 역직기 도입으로 기계 작업자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넷째는 도시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가 많아 노동력을 공급받기 유리하므로 해고를 통해 노동자들의 저항과 노동조합을 분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공장주가 노동력을 쉽게 얻고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여 임금 지출을 줄일 수 있으며, 정착촌을 건설하는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 물가가 아니라 도시에 석탄, 원료, 고객이 많다
 
 게다가 공장이 도시에 있으면 시장과 가까우므로 재료를 구매하고 제품을 판매하기에도 편리했다. 따라서 (물가가 아니라)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에 이용되는 기계를 가동하기 위한 동력 기관이 필요했다. 그것은 수력이 아니라 증기력을 이용한 기관이었다. 수력은 “노동을 동력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야 했지만 증기력은 “동력을 노동이 있는 곳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물론 증기력을 이용하려면 석탄이 필요하고, 탄광으로부터 석탄을 공장까지 수로를 통해 운반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증기력은 수력과 다른데, 그 이유는 도시의 발달은 대중이 난방을 하기 위해 석탄을 조달하기 좋은 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에 위치한 공장과 탄광 역시 가까웠다. 또한 석탄을 운반할 수로의 물은 수력 발전에서와 달리 움직이거나 낙하할 필요가 없었으며, 깨끗할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석탄은 탄광에서 강과 운하, 하천과 수로를 통해 연결된 공장까지 조달되었다.

2.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전환한 시간적 이유
 

 - 물은 꾸준히 빠르게 흐르지 않는다
 
 수력은 수위의 변동에 따라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가뭄으로 수위가 너무 낮으면 수차를 돌리지 어렵고, 폭우로 수위가 너무 높으면 수차가 아예 잠길 수 있으며, 겨울에 물이 얼면 작업을 하지 못한다. 공장주들은 이러한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작업이 불가능한 때에는 노동자들을 집에 보내고 대신 작업이 가능한 때에 연장 근무를 시행했다. 당시 표준 노동일(하루 중 노동 시간)은 평일 12시간, 토요일 9시간으로 주당 총 노동 시간은 69시간이었고, 어떤 작업장에서는 13시간 30분 노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일이 이렇게 길었던 이유는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게 되면 고정 자본, 즉 생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더라도 계속 쓰이는 생산 수단을 그 시간 동안 묵히게 되므로 공장주들은 노동일을 가능한 한 연장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연장 근무를 하게 되면 16시간 반까지, 즉 아침 5시에서 저녁 9시 반까지 일하는 일도 생겼다.
 
  이로부터 노동자들의 저항이 발생했다. 1810년대에 랭커셔의 방적공들로 구성된 ‘노동시간단축위원회’가 생겼고, 1825년부터 1850년까지 공장개혁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이들은 투표권이 없었으며, “청원과 폭동, 집회와 파업, 신문 기고와 세상을 끝장낼 혁명이 임박했다는 선전”등의 방법으로 투쟁했다. 의원 마이클 새들러는 1832년에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을 하루 최대 10시간으로 법적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청소년의 노동을 제한하면 작업장이 운영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상 생산을 중지시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해 공장주, 특히 “수력 재벌”의 반발이 발생했다. 노동일 감축은 일반적인 작업장 가동에 피해를 주며, 특히 기계 가동 시간이 불규칙한 수력 작업장에는 더 큰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 공장법 제정과 수력 발전 공장의 타격
 
 이러한 계급투쟁의 결과로 1833년에는 공장법이 제정된다. 그 내용은 9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금지하고 9세와 13세 사이 아동의 노동을 하루 8시간으로 제한하며, 청소년(14세에서 18세 사이)의 노동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청소년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말름은 이 법이 “업계를 하루 10시간이라는 보편 규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안된 것으로 여겨 공장개혁운동이 패배했다고 지적한다. 공장법은 또한 공공(public)공장감독관이 공장을 감독하도록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였으며, 이로부터 이전의 법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공장법과 공장감독관의 조치에 반발하는 공장주들 역시 발생했다.
 
  1842년의 총파업 이후 1847년에 10시간 법안이 통과된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을 때 이전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법은 기계의 작동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수력은 공장주가 원하는 만큼 물의 흐름을 빨리 조절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노동일 감소 이후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공장주들은 기계의 속도를 높였다.
 
 - 증기 기관은 생산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
 
 노동일 감소는 또한 증기 기관을 교체하도록 만들었다. 와트가 개발한 증기 기관은 물을 끓이면 주전자의 열린 틈이나 관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저압 증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린더에 증기를 채워 팽창시킨 다음 증기를 응축시켜 수축시키는 과정을 반복하여 동력을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다른 발명가들은 높은 압력의 증기를 고정된 금속에 넣어 피스톤을 움직이는 방식의 고압 또는 팽창 증기 기관을 개발하였다. 이 움직임은 균일하지 않고 “경련하듯이” 작동했으며 보일러 폭발의 위험이 더 컸지만 와트의 기관보다 5배 적은 석탄으로도 같은 동력을 만들어 냈다. 공장주들은 와트의 기관에서 새로운 기관으로 증기 기관을 교체하여 석탄을 더 적게 사용하면서도 더 많은 일을 얻어냈다. 따라서 “경제가 석탄 공급의 점진적 확대에 점차 더 의존하게 되었다”. 수력과 증기력을 에너지의 흐름(flow)과 재고(stock)라는 측면에서 다시금 비교하면, 시간에 따라 축적이 진행되는 면직업종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의 흐름(물의 흐름)은 작업을 정지시키기 쉬웠지만 에너지의 재고(석탄 더미)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태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결론: 수력에서 증기 기관으로의 전환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행동과 사회적 관계로부터 기인했다
 
 말름은 화석 연료를 주로 사용하게 된 전환이 자본을 증식시키기 위한 시도 끝에 이루어진 것이며, “변할 수 있으며 인간의 행위로 이루어진,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관계 내에” 뿌리를 둔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증기가 수력으로부터 승리했던 이유는 “일부가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증기가 증대시켰기 때문”이며, “증기가 소중했던 이유는 그것이 서로 대립하던 인류의 부분들 사이의 투쟁에서 어느 한쪽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화석 연료가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선택되었고, 거꾸로 증기 기관은 생산 규모를 늘려 자본주의를 유지시키고 자본을 증식시킨 엔진이 되었다고 하겠다.

3. ‘인류세’보다 ‘자본세’가 더 현실에 부합하며 환경 문제의 핵심을 지적한다
 

-인류는 하나의 행위자였던 적이 없다
 
 또한 그는 “자본가를 인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인류세 서사”를 비판한다. 증기 기관은 인류의 대표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국 내에서조차 극소수에 불과했던, 전원 남성이고 전원 백인이던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설치한 것이며,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 인류 종 전체는 “스스로와 지구 시스템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공유하여 행사한 적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역사적 단계에서 종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인구 증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를 지역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가 더딜수록 인구 증가가 가팔랐기에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가 단순히 인구 증가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헬 지대의 생계형 목동과 평균적인 캐나다 사람 간 현대 에너지 소비량의 차이는 아마도 쉽게 1천 배를 넘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표본 하나가 어떠한 조건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대기에 끼친 영향이 1천 배도 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다른 어떤 생명체도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태어난 조건에 따라 이토록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다른 것다고 그는 주장한다. 따라서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의 시기인 지금을, 인류라는 종을 하나의 지질학적 행위자로 상정하고 ‘인류’세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류세라는 표현은 기후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혹자는 “종 전체를 비난할 수는 없더라도 기후 변동이 인간이라는 종 내에서 기원했다는 점” 때문에 인류세라는 용어가 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말름은 이 주장이 기후 변화의 원인을 자연으로부터 인간으로 탈자연화하였다가(denaturalised) 다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의해 일어난 결과로 설명하며 재자연화하는 것(renaturalised)이라며 결국 기후 변화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한다. 그는 비인간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며 설명한다. 비버와 보노보는 세대가 바뀌어도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 공동체는 “대략 1만 년 동안 계속 나무만 잘라 태우다가 다음 세기에 갑자기 석탄을 태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해 생긴 것(anthropogenic*)이라는 점을 인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사회적 원인을 가진다(sociogenic)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어야만 한다”며 기후 변화는 인간의 사회관계가 자연 속에서 체현된(materialise) 결과라고 주장한다.
*국역본은 ‘인간적’이라고 번역함.
 
  그는 또한 인류를 더 이상 진화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 하나의 종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류가 같은 종이기 때문에 가지는 동일성보다는 인류라는 종 내부의 분열이야말로 “최초의 화석연료 연소의 필수적인 내재적 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특정한 사회관계는 마치 사물들의 자연스러운 성질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타난다”, 생산은 “역사와 무관한 영원한 자연법칙들의 틀에 박힌 것으로 서술되며, 때로는 부르주아적 관계들이 사회 일반의 폐기할 수 없는 자연법칙들로 슬그머니 변조된다”라고 이야기했음을 되짚으며 자신의 주장을 다시금 정리한다. 즉 “지구온난화는 탄소 기반 생명체+자연선택+지능이라는 결합의 필연적인 결말이다”라는 주장과 “인류세 서사”, 즉 기후 변화는 인류라는 종이 단일한 행위자로서 행위하여 나타난 결과라는 주장 혹은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인류가 환경에 영향을 주는 행위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 모두에 반대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기후 위기를 일으키고 중단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인류가 아니라 자본이다 
 
 
 그는 ‘인류세’가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세 서사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탄생한 이데올로기이고,  “기후변화 분야에서 자연과학이 독점적으로 우세하게 되면서 발생한 부작용”이며, 인류세는 “지구온난화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고찰을 방해하고 화석 경제를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는 ‘자본세(the Capitalocene)’라는 단어를 제안한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하게 된 원인뿐 아니라 오늘날 화석 연료로부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의 증식을 원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렴하고 효율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가능하지만 기업이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
 
 말름에 따르면, 단위 시간 동안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는 인간이 1년간 소비하는 양보다 1만 배 더 많다. 해양, 습지, 산지 등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기 어려운 장소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그 차이는 1천 배가 난다. 풍력 역시 현재의 전체 에너지 수요의 1~24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으며, 터빈을 많이 설치한다고 해도 바람의 속력이 느려지지 않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무상으로 주어지는 자연력”이고, 기술만 갖추어진다면 대량생산을 통해 태양전지판과 풍력 터빈의 가격을 낮추어 재생에너지의 가격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 이미 관련한 기술은 존재하며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기에 잘 투자하지 않는다.

 영국의 글로벌 석유 회사인 BP와 셸(Shell)은 21세기 초까지 태양에너지 산업에서 손꼽히는 큰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2013년과 2009년에 결국 태양에너지와 풍력 사업에서 철수했는데, 그 이유는 태양에너지와 풍력이 석유보다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은 “주기에 따라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지만 태양에너지 쪽의 가격은 떨어지기만 했으며, “석유회사들은 30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는 공장에 투자하는데, 태양에너지 쪽 제조업 공장은 5년이면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태양에너지의 가격은 점차 감소하며, 관련 기술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대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말름은 이것을 ‘로더데일 역설’의 하나의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그는 재생 에너지 가격이 감소함에 따라 소비자들이 저렴한 에너지를 원함으로써 재생 에너지가 시장에 유통될 가능성도 있으며, 이 가능성이 실현될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새로운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대해, 말름은 제이콥슨과 델루치의 주장을 인용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재료의 대부분은 화석 기반 시설을 폐쇄하고 재활용함으로써 충당할 수 있고, “아껴서 사용되어야 하고 가능하면 대체되어야 할 몇몇 희토류 광물들을 제외하면 모두에게 충분한 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생물연료(biofuel, 옥수수로부터 에탄올을 추출하는 등 생물로부터 연료를 추출한 것)는 많은 토지를 필요로 하므로 앞으로 이용할 재생에너지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말름은 재생에너지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재생 에너지의 두 가지 약점을 언급한다. “재생 에너지를 얻기에 적합한 장소가 “다른 측면에서 그리 선호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흔히 간헐적이고 저장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이다. 각각 공간적, 시간적 약점을 지적한 것이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을 설계하고 추진한 헤르만 셰어는 이러한 약점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말름은 그의 대안을 비판하며 자신의 대안을 설명한다.

 셰어는 첫 번째 약점에 대해 재생에너지의 공급망이 짧거나 없는 것, 즉 발전 장소와 소비자가 가깝거나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인 미래이며 에너지의 소비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입사광의 강도, 흔히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 수력발전 잠재력의 유무”) 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며, 에너지 공급의 배치에 따라 산업의 재배치 또한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말름은 셰어의 말대로면 생산수단이 에너지의 핵심부를 중심부로 한 공동체에 묶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자본으로 하여금 “동력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오는 대신에 이제 사람들을 동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 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것은 수력에서 증기력을 이용하게 된 것과는 정확히 반대의 과정이다. 따라서 셰어가 “광범위한 재생에너지 사용이 경제의 세계화와 산업의 집중화 과정이라는 범선의 돛에서 바람을 빼 버릴 것”이라고 말한 것은 “노동에 대항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본이 그토록 효과적으로 사용해 온 무기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름은 지적한다.

 셰어는 두 번째 약점에 대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활동을 에너지가 공급될 때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말름은 이에 대해 “사용가치가 노동의 목적이라면 당연한 말”이지만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냉장고에서 컨베이어벨트에 이르기까지, 데이터서버에서 충전소에 이르기까지, 뭔가 잠깐이라도 중단되면 광범위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대신 말름은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공간적 약점에 대해서는 사막에 CSP(집중식 태양열 발전소, 거울을 땅에 여럿 배치하여 그 빛이 하나의 초점에 모이도록 하여 열에너지를 얻는 발전소)를 설치하거나 바람이 강하고 꾸준하게 부는 해상에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한 후 그 전력을 송전탑을 통해 육지와 세계로 보내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계획은 실제로 추진된 적이 있는데, 2009년에 금융계와 산업계 업체들이 ‘데저텍산업이니셔티브(the Desertec Industrial Initiative)’ 사업단을 발족시켰다. 사하라 사막에 CSP를 세워 유럽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 연구에서는 데저텍이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실현이 가능하다고 결론내렸”음에도 거대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 “전체 면적의 단 3%만 전지판으로 덮어도 2008년에 전 세계가 소비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고비 사막에서 CSP를 세우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단 한 명의 민간 투자자도 나서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국가들이 서로 협조하더라도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 회사들은 협조하기보다 “상대를 압도하기를” 원했으며, 국가들 역시 “그중 하나가 손실을 보는데 다른 자들은 그렇지 않다면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두 연구자는 분석했다.

 말름은 시간적 약점, 즉 변동성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지역의, 서로 다른 종류의 재생에너지를 “몇 개씩 다발로 묶어서” 다룰 것을 제안한다. “지열, 조력과 수력 발전설비는 태양에너지나 풍력에 비해 더 일정한 에너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완충 효과라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름은 화창한 아라비아 반도의 데저텍도 완충 효과, 즉 “상쇄와 균형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주장하며, 주변 국가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발생한 풍력 에너지를 “노르웨이의 산악지대 저수지에 물을 채워 넣는 데”에 이용하고, 필요할 때 물을 방류하여 수력 에너지를 이용하는 식으로 노르웨이를 “유럽의 녹색 배터리”로 이용하자는 제안도 있었음을 소개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 논리가 아니라 공적 권력이 역할해야 한다

 하지만 공간적, 시간적 약점에 대해 말름이 제시한 대안은 사전 계획과 협조를 필요로 하며, 거대 기업이나 노르웨이의 전력회사는 “투자의 동기가 될 정도로 큰 이윤을 여기서 기대할 수 없다”. 로빈 제이콥슨과 스테판 제이콥슨은 이러한 사업에 투자가 가능하게 되려면 “국가가 두 개의 망치를 들어야”, 즉 금융 부문의 완전한 재편과 막대한 대출 능력을 가진 공공투자은행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말름은 공적 권력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는 사례로 로스앤젤레스 시를 든다. 로스앤젤레스 시가 “석탄화력발전소와의 계약을 중단하고, 풍력에 대거 투자하며, 사막에 상업 발전소 규모의 태양광 시설을 건설하고, 서부 7개 주의 풍력과 태양광 전력들을 연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스앤젤레스시가 전력 공급, 즉 “조달, 발전, 송전과 송전망 통합”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글을 소개하며 “그러나 세계의 송전망과 발전 시설은 지금 민영화의 바람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보기에 말름이 재생 에너지의 공간적, 시간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지한 대안은 자본이 이윤을 남기기 어렵기에 현재의 자본주의 하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셰어의 주장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말름이 에너지 생산을 개별화하자는 셰어의 주장을 비판하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에너지 생산과 분배를 진행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이후의 생산양식이 “생산자에게 사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협업, 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점유−를 바탕으로 개인적 소유를 재건한다”라고 『자본론』에서 주장했던 마르크스를 연상케 한다.

5. 환경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시 상황과 같은 계획경제가 필요하다

 말름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투자하고, 결정하고,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투자와 결정을 하고,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와 함께 쓰여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뒷받침해주지 않고 화석연료 사용을 직접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해서는 “과학계에서 합의된 최신 견해에 따르면, 세계의 배출량은 2020년 이전에 정점에 도달해야 하며 이후 최소한 3%씩은 감소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증가율과 같은 비율로 감소해야 하고, 폭증이 뒤집혀서 물밀듯한 감축으로 바뀌어야만 하며, 평시활동이 완전히 전복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개발도상국에 약간의 여지를 남겨 주기 위해 부유한 국가들은 5%나 10%씩 또는 그 이상으로 감축해야만 한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세운 기록을 보면, 1990년대 당시 몇 해 동안 배출량이 5% 감소했다”. 따라서 말름은 “대안은 없다. 계획경제는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한다. 기후변화의 이러한 시간성은 "2020년 이전에 세계적 규모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그 후에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혁명가들에게는 더 실용적이 되기를 요구하고, 세금과 관세, 전기자동차 할인 등으로 시장을 조금씩 유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혁명적 처방을 고려하도록 강요한다고 말름은 지적한다.

 케빈 앤더슨과 그의 동료 앨리스 보우스는 이것을 ‘계획적인 경기후퇴’라고 표현했고, 말름은 객관적으로 볼 때 이것이 자본에 대항한 전쟁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로 말름은 러시아 내전 당시 볼셰비키에 의해 이루어진 강력한 통제 조치인 ‘전시 공산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국가체제를 든다. 당시 미국은 국가가 군수물자의 생산을 계획하고 강제로 집행했으며 노동력을 동원했고, 재산을 징발했으며 제조업자들이 계약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했다. 개인 소유 차량을 생산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즉, 간단히 말해서, 적에게 승리하겠다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서 전체 경제를 동원한 것이다”. 말름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시와 비슷하게 ‘저탄소미래전환특수부’ 휘하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켜 “기금을 모으고, 노동력을 재배치하며, R&D를 가속하고, 에너지의 재고에 기초한 고정자본을 압류하며, 버스부터 CSP 거울에 이르는 모든 품목의 대량생산을 조직하는 동시에 에너지 흐름의 전 동력을 전개하게” 된다면 “매년 정해진 양의 배출 감축이 화석 자본과 그 대변인들의 의지를 무시하고 집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구공학은 환경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생물권을 자본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름의 주장보다 더 활발히 제시되는 환경 문제의 해결책은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다. “햇빛을 반사시켜 우주로 돌려보낼 거울을 설치”한다든지, “지붕을 더 하얗게 칠한다든지”, “공기 중의 탄소를 빨아들여서 이를 지하에 밀어 넣는다든지”, “바다에 철을 뿌려서 플랑크톤의 번식을 촉진시켜” 이들이 “광합성을 해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도록 하여 그들이 죽으면서 그 탄소를 가지고 해저로 가라앉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효과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화산재가 태양복사의 일부를 차단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듯 인간이 황산염 에어로졸을 살포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말름은 이것이 오존층 파괴, 하늘의 백화(whiten), 강수, 광합성, 계절과 낮과 밤에 대한 교란, 대기오염, 태양광 발전의 효율 저하 등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특히 이 과정이 시행되던 중에 중단된다면 그동안 누적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급격한 온난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말름은 지구공학 연구에 후원하는 것은 빌 게이츠, 캐나다의 석유왕 머레이 에드워즈이며, 최근까지도 기후변화를 부정해 온 “미국기업연구소와 보수 우익의 기타 싱크 탱크” 역시 이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고, 석유 회사인 셸, BP, 엑손(Exxon), 항공기 제작 및 방위산업체인 보잉 역시 이에 관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말름은 황산염 에어로졸 방법을 지지하며 경제를 빠르게 탈탄소화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키스가 “경제를 계획한다는 것은 궁극의 금기이지만, 기후를 계획하는 것은 상세히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노동을 실질적으로 종속시키기 위해 시작된 사태가 이제 아예 생물권을 실질적으로 종속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려고 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제 자본주의보다 차라리 기후 시스템에 고의적으로 대규모 개입하는 것을 상상하는 편이 훨씬 더 쉬워지고 말았다”라는 것이다.

6. 정리
 

 말름은 그의 책에서 화석 연료가 기계에 이용된 것이 인간의 자연적 행동이나 본성에 따른 결과도,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라는 종이 필연적으로 도달한 결과도 아니며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기 위해 선택된 결과임을 논증한다. 이것은 화석 연료와 증기 기관의 발전, 즉 기술의 발전이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인과와는 반대의 것이다. 또한 최근 대중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때에 자주 제공되는 인식의 틀은 현재의 지질학적 시간을 ‘인류세’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가 심화된 사회를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말름은 현재의 환경 문제를 인식함에 있어 ‘인류세’라는 접근에 반대한다.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인류라는 종 전체가 결정하거나 수행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 인류 중 아주 소수인 자본가들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라는 종의 일부가 행위한 결과로 오늘날의 환경 문제가 도래한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류 역시 자연의 일부이므로 환경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없으며, 인간의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며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달라짐을 간과한 것이다. 말름은 대신 ‘자본세’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늘날 자주 논의되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고체로 포집한다든지, 플랑크톤의 광합성량을 늘려 탄소를 고정한다든지, 인공 구름을 만들어 태양복사에너지를 줄인다든지 하는 ‘지구 공학’기술이다. 하지만 말름은 이러한 지구 공학 기술이 여러 부작용을 가질 수 있으며, 특히 기술이 적용되다가 불가피하게 중단되면 그동안 미루어진 지구 온난화의 효과가 몰아서 오게 될 것이라며 정지 문제(termination problem)를 지적한다. 그는 대신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확인된 태양 에너지와 바람 에너지, 수력 에너지, 지열 에너지 등을 화석 연료 대신 활용하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헤르만 셰어는 발전기와 소비자의 거리가 가깝거나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인 체계라고 주장했으나, 말름은 공간적, 시간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해야 하며, 지구 곳곳의, 또 여러 종류의 발전 설비를 다발로 묶어서 시간이 변해도 에너지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자본에 맡겨두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권력들이 전시 상황과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에 투자하고, 결정하고, 화석 연료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 발전과 환경 문제는 과학, 기술의 문제이며, 과학과 기술이 사회 속의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름의 논증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 특히 자본을 증식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가 어떤 기술을 발전시킬지를 결정하며 또한 화석 연료에서 재생 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막고 있음을 지적한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에서 석탄이 어떻게 널리 쓰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이 글에 요약된 내용이 다가 아니니 궁금한 독자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또한 공적 권력이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름의 생각을 더 알고 싶다면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21세기 생태사회주의』를 읽기를 추천한다. 한편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화석 연료는 석탄이 아니라 석유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 석유가 세계적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석유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본과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민중은 어떤 갈등을 겪었고, 또 겪고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참고 문헌]
 

-단행본

안드레아스 말름,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 5-8장, 12장 일부, 15장, 16장, 두번째테제, 2023.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1 (하), 비봉출판사, 2015.

-논문

Damian Miller, Why the oil companies lost solar, Energy Policy, Volume 60, 2013, pp 52-60.

-칼럼

김연숙, 왜 천연가스인가?,가스기술愛, 2020 Vol. 01. https://www.kogas-tech.or.kr/webzine/vol01/sub02.html

우석영, ‘빛나는 신세계’를 열다 ② 헤르만 셰어: 탈핵과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끌었던 독일 ‘태양의 교황’, 한겨레 21, 1139호.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2725.html

위대현, 화석 자본, 화석 경제, 그리고 해방의 전망, 대학지성 In&Out,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96 (이 글로부터는 원서와 국역본의 표지 이미지를 얻었음)

장석준, 석탄-석유를 없애야 자본주의가 죽는다, 프레시안, 2016.08.23.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40381

-기사

송한수,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 시작…“안개일 뿐” 되뇌다 정권 잃을 뻔[지구촌 소사], 서울신문, 2023.12.04.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1204500047

-웹 자료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Parish, Factory and Charity Apprenticeships in England, 2015.12.26.https://www.familysearch.org/en/wiki/Parish,_Factory_and_Charity_Apprenticeships_in_England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주정원 기자 garden41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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