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CERN) 를 가다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6기 | 유경민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이하 CERN) 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물리학 연구 시설이다. 본 기사에서는 한국물리학회의 지원을 받아 2주간 CERN에 방문하여 여러 시설을 둘러본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CERN의 주요 시설과 각각의 기능을 알아본다.
1. 개관

그림 1. CERN의 주요 시설을 나타낸 모식도. (사진 = CERN 홈페이지)
CERN은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럽 연합 12개국에 의해 1954년 세워졌으며, 현재는 유럽권 25개국을 회원국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림 1에는 CERN의 여러 시설들과 그 대략적인 위치 및 형태가 나타나 있다. 각 시설은 연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가동되기도 한다. 여러 시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림 1의 상단에 가장 큰 원으로 그려져 있는 LHC (Large Hardron Collider) 이다. LHC는 그 둘레가 27 km에 달하며, 양성자 하나를 최대 7 TeV의 에너지로 가속시킬 수 있다. 7 TeV는 J 단위로 바꾸면 약 1 μJ에 불과하며, 대략 모기가 날아다닐 때의 운동 에너지와 비슷하지만, 이 정도의 에너지를 양성자 하나에 집중시킨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날아다니는 모기는 그저 미물일 뿐이지만, 그와 동일한 에너지로 날아가는 양성자는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
입자물리학을 실험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입자를 매우 빠르게 가속한 뒤 충돌시키는 것이 기본적인 전략이다. 이미 존재하는 입자를 충돌시켜 산산조각내는 과정에서 높은 에너지가 관여하는 모종의 반응이 일어나면서, 입자물리학에서 관심을 가지는 더 작은 입자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여 그 에너지를 높이면 높일수록 새로운 입자나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입자를 어떻게 그렇게 높은 에너지로 가속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가속기 (accelerator) 에 있다.
2. 가속기
가속기는 입자를 가속하여 에너지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기본적으로 전하를 띤 입자에 전기장을 걸어 가속시키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전기장을 걸면 전하를 띤 입자만 가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LHC에서는 양전하를 띠는 양성자나 납 (Pb) 원자핵을 주로 가속시킨다.
가속기는 그 형태에 따라 선형 가속기와 원형 가속기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 종류에 따라 입자가 가속기 내에서 운동하는 궤적이 달라진다. 선형 가속기 내에서 입자는 직선으로 운동하며 점점 가속되고, 원형 가속기 내에서 입자는 원형으로 운동하며 가속된다. 선형 가속기에서는 입자가 가속기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면 더 이상 입자를 가속할 수 없지만, 원형 가속기에서는 계속 입자를 원운동시키며 서서히 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속기 개발 초기 단계에는 선형 가속기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선형 가속기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로 인하여 최근에는 LHC를 필두로 하여 원형 가속기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가속기에서는 입자의 가속만큼이나 그 궤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속한 입자의 궤적을 유지 및 조작하면서, 원하는 시각에 원하는 장소에서 충돌시키는 것은 상당한 정밀도를 요구한다. 가속기에서 입자의 궤적을 조작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전하를 띤 입자에 자기장을 거는 것이다. 전하를 띤 입자는 자기장에 의하여 자기력을 받으며 궤적을 바꾸게 되고, 입자가 가속될수록 원하는 만큼 궤적을 바꾸기 위하여 더 큰 자기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LHC에서는 강한 자기장을 이용하여 입자의 궤적을 바꾸기 위해, 초전도 전자석을 사용한다. 초전도 전자석이란,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이 전혀 없는 물질인 초전도체를 이용한 전자석이며, 일반적인 영구 자석이나 전자석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자기장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장은 가속기에서 가속되는 입자를 일정한 궤적으로 유지해 주고, 돋보기가 햇빛을 모아 주듯이 입자가 너무 퍼지지 않게 계속해서 모아 준다.

그림 2. LHC에 투입될 양성자를 생성하는 수소 기체. 용기 속 수소는 곧 7 TeV의 에너지로 가속될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사진 = 유경민 기자)
이제 CERN에서 가장 큰 가속기인 LHC가 동작하는 방식을 알아보자. LHC가 매우 높은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처음부터 혼자서 동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LHC는 작은 가속기로부터 낮은 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를 제공받아,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에너지까지 가속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가속될 입자는 가장 먼저, 그림 1의 가장 하단에 표시된 LINAC3 (LINear ACcelerator 3) 이라는 선형 가속기에서 생성 및 가속된다. 가속되기 전까지 입자는 그림 2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수소 기체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LINAC3을 통과한 후에는 4.2 MeV의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그 뒤 양성자는 그림 1에 자주색으로 표시된 원형 가속기인 PS (Proton Synchrotron) 로 투입되어, 28 GeV의 에너지로 가속된다. 이렇게 가속된 양성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원형 가속기인 SPS (Super Proton Synchrotron) 이다. SPS의 둘레는 7 km이며, 양성자를 최대 450 GeV까지 가속할 수 있다. LINAC3, PS, SPS를 순서대로 거친 양성자는 이제 LHC로 투입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최종적으로 LHC로 투입된 양성자는 7 TeV까지 가속되고, 검출기 (detector) 내에서 충돌하게 된다.
3. 검출기
아무리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해서 충돌시켰다고 해도, 그 충돌을 분석할 장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검출기는 가속기를 이용하여 입자를 충돌시켰을 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입자들의 경로를 추적하여, 충돌 과정에서 어떤 입자가 생성되거나 소멸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검출기가 충돌 과정에서 어떤 입자가 생성되고 소멸했는지, 그것이 우리가 찾고 있던 새로운 입자인지 곧바로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검출기는 충돌 과정에서 주로 생성되는 다양한 입자들의 궤적을 추적하기만 할 뿐이며, 입자들의 궤적을 역산하는 과정을 통해 충돌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재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검출기는 두 종류의 ‘눈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눈금은 시간 축과 공간 축에 그어져 있다. 눈금의 간격이 1 mm인 자를 이용하여 길이가 0.001 mm인 대상을 측정할 수 없듯이, 검출기 또한 시간과 공간상의 최소 눈금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검출기의 시간상 눈금으로 인하여,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며 다른 입자로 붕괴하는 입자는 검출기를 통해 발견할 수 없다. 대신 이러한 입자들은, 검출기가 얻은 다른 입자들의 궤적을 통해 역추적된다. 또한 검출기의 공간상 눈금으로 인하여, 입자의 궤적은 일정 수준의 정밀도 이상으로 정확하게 측정될 수 없다. 검출기의 성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대부분 시간 및 공간에 대한 눈금을 더 촘촘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성능이 높아질수록 실험 결과의 정밀도 또한 개선된다. 때문에 CERN에서는 항시 LHC를 가동하여 입자 충돌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검출기를 유지보수하고 그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업그레이드 기간을 갖는다.
검출기는 크게 4가지 부분으로 구분되며, 충돌의 결과로 만들어진 입자들은 네 부분을 순서대로 통과하며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먼저 tracker는 자기장을 걸어 준 상태에서 전하를 띤 입자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그 궤적을 포착한다. 이로부터 입자가 전하를 띠고 있는지 여부와 그 부호를 확인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위치한 calorimeter는 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이며, 측정하는 입자의 종류에 따라 electronic calorimeter와 hardronic calorimeter로 분류된다. Electronic calorimeter에서는 전자와 광자가, hardronic calorimeter에서는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강입자들이 검출되며 그 에너지가 측정된다. 가장 마지막에는 뮤온이라는 입자를 검출하는 데에 특화된 muon detector가 위치한다. 뮤온은 충돌 시에 발생한 반응의 종류에 따라 생성되는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뮤온의 개수는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입자의 생성과 소멸을 역추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LHC의 여러 검출기 중 하나인 CMS (Compact Muon Solenoid) 가 뮤온 검출에 특화되어 있다.
LHC에는 크게 4종류의 검출기가 있으며, 이들은 그림 1에서 LHC의 경로 상에 노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CMS 외에 ATLAS (A Toroidal LHC ApparatuS), ALICE (A Large Ion Colliding Experiment), LHCb가 그것이다. 이 중 LHCb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 입자인 바텀 쿼크 (bottom quark) 를 집중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장비이고, ATLAS, ALICE, CMS는 검출하는 입자의 종류별로 약간의 성능 차이가 있지만 모든 입자를 검출하여 충돌을 분석할 수 있는 범용 검출기이다. LHC에서 실험을 진행할 때에는 위 검출기 중 두 개 이상을 이용하여 실험 결과를 교차검증하게 되며, 이 때문에 각 검출기들은 LHC의 경로 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기자가 CERN을 방문했을 때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검출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ALICE와 CMS의 단면을 실제 크기로 그려 놓은 벽면을 보고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 3과 4에 각각 ALICE, CMS의 단면이 나타나 있다.

그림 3. ALICE가 있는 건물 외벽에 그려진 ALICE의 단면도. (사진 = 유경민 기자)

그림 4. CMS의 단면도. 앞에 있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진 = 유경민 기자)
4. 데이터 처리
검출기에서 얻어지는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아무런 처리도 거치지 않았을 때 검출기에서 얻어지는 시간당 데이터는 1초당 1000 TB 정도이다. 쉽게 말해, 평범한 16 GB짜리 USB가 1초에 6만 개씩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것도 USB마다 데이터를 꽉꽉 채운 채로 말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쌓이는 데이터를 모두 저장하고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검출기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무작정 저장, 분석되는 것이 아니고, 얻어진 데이터 중 물리적으로 흥미로운 데이터만이 추출되어 분석 대상이 된다. 이처럼 ‘흥미로운’ 데이터를 선별하는 대표적인 기준이 특정 반응에서 발생한 뮤온의 개수이고, 이 때문에 muon detector가 검출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선별하여 저장, 분석한다고 해도, 여전히 1초당 1 GB 수준의 데이터가 생성되게 된다. 하루면 100 TB, 한 해 동안 30 PB 수준의 데이터가 모이는 셈이다. 때문에 CERN에서는 수집한 대용량의 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분석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민의 흔적 중 하나가 바로 월드 와이드 웹 (World Wide Web) 이다. 이제는 전 세계가 사용하는 통신망인 월드 와이드 웹은 1990년 CERN 소속의 컴퓨터과학자인 팀 버너스리 (Tim Berners-Lee) 가 개발했다. 원래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 목적은 CERN 내부에서 각종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전 세계로 확대되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되었다. 그래서 CERN에는 그림 5와 같이, 팀 버너스리의 연구실이었던 곳에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을 기념하는 동판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5.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을 기념하는 동판. (사진 = 유경민 기자)
5. 마치며
혹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입자를 충돌시켜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불안정한 입자를 발생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곤 한다. 기초과학 연구가 인류의 과학 발전에 주춧돌을 놓아 준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도, 기자가 CERN에 2주간 머무르며 느낀 입자물리학 연구의 원동력은 ‘가장 작은 세계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 이었다. 그림 6은, 입자물리학 이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David Tong 교수님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하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을 찍은 사진이다. CERN에 머무르며 만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은 저마다 관심사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입자물리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들이 있는 한, ‘가장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인류의 발걸음은 계속되지 않을까.

그림 6. David Tong 교수님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을 하기 위해 모여든 학생들. 그들의 눈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 = 유경민 기자)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유경민 기자 yukm0227@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