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여름 자몽 시리즈: 자연과학의 다학제적 탐색] 2. 생물학의 문제를 물리학으로 풀다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7기 | 김지엽
에르빈 슈뢰딩거는 1944년 그의 저서 [What is life?]에서 이렇게 말한다. “크고 중요하며 아주 많이 논의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공간적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 속의 사건들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책이 설명하고 확립하고자 하는 대답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현재의 물리학과 화학이 그 사건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과학들이 언젠가 그 사건들을 설명하리라는 점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될 수 없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공간적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물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오늘날 생명과학과 물리학이 결합된 생물물리학의 토대가 되었다. 8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생물물리학에서는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생물학과 물리학이 결합된 다학제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이 필요할까? 이번 기사에서는 단백질 구조 동역학 연구실의 류제경 교수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생물물리란?
Q. 단백질 구조 동역학 실험실에서 어떠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A. 저희 연구실에서는 생물물리를 연구하는데, 생물이 연구하는 대상이고 물리는 분석 방법이나 방법론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염색체의 형성 원리, 염색체의 형성과 관련된 후성 유전학적인 현상들이 분석하는 대상이 됩니다. 저희는 단백질의 구조 동역학을 알 수 있는 기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시간으로 액상에서의 단백질 구조 변화를 고해상도로 얻을 수 있습니다. 전자현미경 또는 X선 회절 분석법은 구조 자체를 보는 반면 저희는 구조의 동역학을 보는거니, 더 많은 정보를 얻는거죠. 또한 단분자 형광 이미징, 자기 집게 등의 기술을 이용해 단백질의 작동 원리부터 염색체의 형성 원리, 그리고 후성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생물학과 물리학의 공통된 지향점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A. 먼저, 생물학과 물리학 모두 자연에 존재하는 복잡한 현상들을 보편적인 원리로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생물학은 생명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보편적 원리를 이해하고 규명하려는 학문이며, 물리학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법칙을 탐구합니다. 이런 점에서 두 학문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방향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생물학적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생명체 안에서 작동하는 물리적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 비록 생명현상은 매우 복잡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물리학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DNA, RNA, 단백질과 같은 생체 고분자들은 고분자 사슬(polymer chain)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운동과 상호작용은 고분자 물리학을 통해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생명현상의 기본 원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Q. 단백질 연구와 구조 동역학의 학제 간 연구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희 연구실 학생들은 기계공학, 화학, 물리, 생명, 컴퓨터공학 등 출신이 되게 다양합니다. 저는 이러한 다양한 배경을 좋아하는데, 대상은 생명체이지만 연구하는 툴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생물물리는 정의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 훈련 방식, 방법론, 다루는 시스템,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 이렇게 네 가지 기준을 가지고 각 항목별로 생물인지 물리인지에 따라 총 16가지의 정의가 존재할 수 있거든요.

생물물리의 분류. 기존의 생명과학, 물리학 또한 포함된다. (출처 = Ramin Golestanian, 2021)
Q. 생물물리는 언제 처음 시작되었나요?
A. 우리가 생명현상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DNA의 발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DNA는 물리학자들이 정립한 X선 회절 분석법에 의해 발견할 수 있었죠. Cryo-EM(저온전자현미경), NMR(핵 자기 공명 분광법), Super-resolation microscopy(SRM, 초고해상도 현미경) 모두 물리학자들이 개발했습니다. 이렇듯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가 도약한 시점에는 물리학이 있었어요. 따라서 생물물리의 역사는 생명과학의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과 다르게 ‘생물물리’라는 단어가 정착된 데에는 슈뢰딩거의 공헌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가 쓴 책 “What is life?”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이 ‘Negative entropy’라고 말하죠. 모든 자연현상의 엔트로피 변화는 positive entropy로 설명할 수 있는데, 생명 현상은 일종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그러나 생명현상은 결국 열린 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애매하긴 합니다)이렇게 생명현상을 물리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시작되며 ‘생물물리’라는 단어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생물학과 물리학 간에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차이점이 생물물리학에서 어떻게 보완되나요?
A. 저희는 이 차이점 때문에 나뉘는 생물학과 물리학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 차이를 보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정의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좀 멸시도 받았어요. ‘물리학과에서 왜 생물을 하는가?’, ‘너는 물리학을 하는게 아니라 생물학을 하는게 아니냐?’라는 비판도 받은 적이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생물물리가 한국에서 잘 정착되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오히려 생물물리가 물리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 생물학과 물리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생물물리로 들어선 계기
Q. 교수님의 학부 당시 주전공이 수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수학을 전공하시면서 어떻게 물리학을 복수전공하게 되셨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신 후 생물과 물리를 결합한 연구를 하시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제가 처음부터 생물물리를 하고 싶어서 수학을 전공한 것은 아닙니다. 학부 시절, 저는 특정 과목 하나를 유난히 좋아했다기보다는 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고 두루두루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융합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고, 다양한 분야를 두루 이해할 수 있는 기초를 쌓기 위해 수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물리학도 복수 전공하게 되었고요. 반면, 생물학은 제게 익숙한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암기 중심의 학습 방식이 저와 맞지 않아서, 생물학 공부 자체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생물학을 연구 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는 대학원 시절에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생물물리학을 연구하던 선배와 저녁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선배의 지도교수님은 생물물리에 특별히 집중하시는 분은 아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스스로의 열정을 바탕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고, 제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암을 정복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한다는 것'의 매력을 깊이 느꼈고, 그 계기로 생물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다음 학기에 생물물리 전공 교수님께서 새로 부임하셨고, 저는 직접 연락을 드려 본격적으로 생물물리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수업으로서 배우는 생물"과 "연구 대상으로서 접근하는 생물"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명과학부에서 배우는 전통적인 생물학과, 생물물리 연구를 통해 다가가는 생물학도 그 성격이 다릅니다. 만약 제가 학부 시절에 수업만을 통해 생물을 접했다면, 아마 지금처럼 생물학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박사 과정 동안에도 저는 생물학 전반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이 부족했고, 암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정 주제, 예를 들어 생체막의 융합 현상처럼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해서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터넷과 논문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 학습하고 연구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물물리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기를 싫어해서 생물학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수학이나 물리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생물물리 분야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학제 간 연구를 수행하고자 하는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이 가져야 할 자세
Q. 생물물리를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커리큘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학제 간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할 때, 사람들이 커리큘럼을 짜야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온 사람을 데리고 연구하고 싶지 않아요. 물리를 잘 하는 학생은 물리와 관련된 생물물리 연구를, 생물을 잘하는 학생은 생물과 관련된 생물물리 연구를, 컴퓨터를 잘 하는 학생은 컴퓨터와 관련된 생물물리 연구를, 측정 기기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은 측정 기기 만드는 방식으로의 생물물리 연구를, 화학을 좋아하는 학생은 생화학 바탕의 분자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생물물리 연구를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였을 때,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만약 어떤 학생이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공부시키는게 아니라 그 부분을 잘하는 학생을 붙여줘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통일된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다 동일한 과목만 듣게 한다면 결국 다 동일한 능력치만 가지게 되고 각자의 특색이 사라지는거죠. 따라서 학부 때 자신의 특색을 개발한 친구, 이기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학생이 생물물리와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Q.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에서도 교수님과 같은 생물물리학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텐데, 그런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먼저 남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협업 능력을 기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말하는거죠. 세 번째로, 생물물리 뿐만 아니라 모든 이공계 연구자에게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드는 부분은 롤러코스터 타는 걸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자는 때로는 밑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하지만, 좋은 연구 결과나 논문이 있으면 또 많이 올라가기도 하거든요. 내려갈 때 낙심하고, 올라갈 때 교만해지면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학제 간 연구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학제 간 연구는 서로 만난 적이 없던 학문이 만나는 것이고, 그 과정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거든요. 하지만 고정된 궤도만 도는 회전목마보다 롤러코스터가 더 재밌는 것처럼, 그 불안정성을 즐길 줄 아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방금 전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 학제 간 연구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복수전공이나 타과 과목들을 수강하는 것도 전문성을 개발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좁혀서 공부를 해야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를 다 잘하려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질 수 있거든요. 자기 것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것까지 잘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제가 학부때의 제 자신을 만난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주전공으로 하고, 그 다음에 필요한 지식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결정해서 공부하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그리고 AI의 등장으로 공부하는 방법이 완전히 변화했어요. 이제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필요한 지식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죠. 학부생 중에 이런 학생이 있어요. 수업을 다 채워서 듣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지식을 머리에 담는, 그렇게 바쁘게 사는 학생들이 있어요. 근데 그런 과정이 창의력을 말살시킬 수도 있거든요. 지식을 고민하지 않고 습득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연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연구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문제를 잘 푸는 것보다 문제를 찾아낸 후, 그 문제를 기존에 없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거든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주어진 틀, 이미 존재하는 공식에 의존하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나만의 방법이어야 하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수업을 많이 듣기보다는 좀 여유있게 들으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해라,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연구 참여를 꼭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참고문헌
1. Ramin Golestanian, “All the questions about biophysics”, Journal Club for Condensed Matter Physics, May 2021. Doi: 10.36471/JCCM_May_2021_02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김지엽 기자 kimjiyeob@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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