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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여름 자몽 시리즈] 02. 컨택트: 언어, 시간 그리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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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대 학생기자단 자:몽 9기 | 이세란
 

   거대 외계 비행선이 지구에 나타난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16년에 개봉한 SF 영화 <컨택트>는 현대 SF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SF 영화 <듄> 시리즈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했다.
 
 

<컨택트> 스틸 컷. 루이스 박사 뒤로 외계 비행 물체가 비친다. (사진 = 유니버셜 픽처스)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 ‘셸’이 출현하면서 시작된다. 비행 물체가 온 목적이 지구를 침략하기 위함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주인공 루이스 뱅크스 박사(에이미 애덤스)는 미국 육군의 부름을 받아 셸에 진입해 외계 존재와 직접 소통하여 그들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을 밝혀내야 한다. 셸 내부에 진입하자 일곱 개의 다리를 가진 거대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Heptapod)가 등장한다. 루이스 박사는 이론물리학자 이안 도넬리(제러미 레너)와 협업하며 헵타포드에게 지구의 문자(알파벳)를 가르치며, 동시에 그들이 내뿜는 먹물 같은 원형의 문자를 해석한다.
 

언어가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 언어 상대성 이론
 

   영화 <컨택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바로 언어 상대성 이론이다. 20세기 초,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Edward Sapir)와 벤저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는 언어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인지 과정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언어 상대성의 대표적인 예시는 언어권에 따라 무지개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우리나라는 무지개를 일곱 빛깔이라 인식하지만, 이슬람권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의 4가지로, 아프리카의 쇼나(Shona) 부족은 빨강, 노랑, 파랑의 3가지로 인식한다. 사용하는 색채 어휘에 따라 전지구에서 똑같이 보이는 대상인 무지개를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영화에서도 이 개념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각국은 헵타포드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데, 중국은 중국의 전통 보드게임인 마작을 활용한다. 마작은 승패가 나뉜 경쟁형 게임, 즉 승리와 패배, 타협과 위협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언어이다. 이러한 언어를 사용해 헵타포드와 소통할 경우, 헵타포드의 메시지를 게임의 프레임에 갇혀 위협적인 의미로 해석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언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헵타포드와 중국 언어학자들이 대화 상황을 승패가 나뉜 대결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언어가 사고방식에 끼치는 영향으로 인해 헵타포드와 인류가 원치 않았던 전쟁을 치르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는 루이스 박사가 헵타포드의 문자를 완전히 익혀 갈수록 그녀의 사고방식과 시간에 대한 인식까지 그들과 닮게 변화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영화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단순히 새로운 말을 익히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정임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다
 

   인간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흐르는 선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헵타포드의 시간관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에게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이 아닌 하나의 원처럼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한 순서 없이 모든 순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헵타포드의 문자가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형인 것, 그들의 언어가 시제 표현이 없는 다른 지구의 언어와 유사하다고 언급되는 것은 그들의 비선형적 시간 인식을 암시하는 장치이다.
 
 

<컨택트> 스틸 컷. 루이스 박사가 헵타포드 문자 이미지를 들고 서있다.(사진 = 유니버셜 픽처스)
 
 

   루이스 박사 역시 헵타포드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한 이후부터 이러한 비선형적 시간 인식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의 자신이 겪는 사건과 미래의 자신이 알게 될 정보들을 활용한다. 처음에는 과거 회상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사실은 미래의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관객은 영화의 구조 자체가 헵타포드의 시간관을 따라 설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원작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시간관을 설명하기 위해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를 언급한다. 페르마의 원리는 빛이 두 점 사이를 이동할 때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른다는 원리이다. 마치 빛이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미래를 포함한 모든 시간을 동시에 인식하는 헵타포드의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 원작에서는 물리학자 게리(영화에서는 이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헵타포드가 페르마의 원리에 반응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헵타포드가 인류와는 다른 수학, 물리학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시간관을 암시한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수학적 설명과 물리학자 이안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간의 철학적 의미와 루이스의 선택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영화 후반부에서 루이스 박사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며 그들의 시간관에 동화되어 미래에 자신의 딸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역시 자신을 떠날 미래를 알게 된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 미래를 피하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도달할 결말을 알고서도 그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출발하는 순간 이미 목적지를 알고 최적의 경로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페르마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복잡한 물리학 이론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루이스의 삶과 선택을 통해 그 개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인가
 

   영화 후반부에서 루이스 박사가 자신의 미래를 모두 알게 된 이후에도 같은 선택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한 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를 전부 알게 되지만, 미래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행복과 사랑의 순간들까지 모두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삶은 고통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쁨과 사랑까지 모두 포함하는 과정이며, 미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운명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결말은 원작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와도 차이를 보인다. 원작에서는 미래를 인식하는 순간 그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이를 자유의지로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라는 결정론적 관점이 더욱 강조된다. 반면 영화는 루이스가 미래를 알고도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장면을 통해, 미래를 바꿀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현재의 선택을 받아들였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처럼 영화는 원작보다 자유의지와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더욱 열린 형태로 제시하며 관객에게 고민을 남긴다.
 

모든 분쟁의 첫 무기: 언어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무기다.” 영화 초반부에 소개되는 루이스 박사의 책의 한 구절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루이스 박사가 헵타포드에게 지구를 방문한 목적을 묻자 '무기 제공'이라는 답을 얻는다. 처음 이 말을 들은 각국 정부는 이를 전쟁을 위한 무기로 해석하며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한 뒤, 여기서 말하는 '무기'가 상대를 파괴하는 무기가 아니라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언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루이스는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 능력을 이용해 국가 간 오해를 해소하며 전쟁 직전까지 치닫던 국제적 갈등을 막아낸다. 결국 인류를 구한 것은 강력한 군사력도, 첨단 과학기술도 아닌 바로 서로를 진정한 소통으로 이끄는 언어였다.
 
   영화는 이를 통해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대를 공격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언어는 잘못 해석될 경우 오해를 불러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오해를 풀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헵타포드가 인류에게 남긴 진정한 선물은 새로운 언어였으며, 그 언어는 지구에 평화와 협력을 가져온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컨택트>는 언어와 시간이라는 과학적, 철학적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SF 영화다. 언어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언어가 사고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비선형적 시간관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간의 삶과 선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화려한 액션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좋아한다면, <컨택트>는 꼭 한 번 감상해 볼 만한 영화다. 영화를 감상한 뒤 “미래를 알아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를 추천한다.
 


 
참고문헌
 

신동훈. (2025년 6월 27일). "말하는 대로 생각한다?" ... 언어 상대성 이론의 세계. 한국심리학신문. https://psytimes.co.kr/news/view.php?idx=10439
서정원. (2024년 3월 29일). 언어가 다르면 세상의 색깔이 달라진다. 한국심리학신문. https://www.psytimes.co.kr/news/view.php?idx=8288
Chiang, T. (2002).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Tor Books.


 
자연과학대학 학생기자단 자:몽 이세란 기자 srlee04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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