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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름 자몽시리즈] 08. 헨리 모즐리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6기 | 최지원

양성자 순서로 원소들을 배열한 주기율표를 발표하고, 각 원소의 고유 X선을 측정해 ‘특정 X선의 진동수의 제곱근은 원자번호에 비례한다’는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한 헨리 모즐리에게 자몽상을 수여합니다.


헨리 모즐리 (사진 = 위키백과)



자몽이 바라본 노벨상

노벨상의 수상 기준은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인가?'이다. 헨리 모즐리는 물리학 연구를 했지만 현대 화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원자구조론에 크게 기여했고, 이는 현대 주기율표의 근거가 되었다. 주기율표상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원소들을 분석하고, 여러가지 원소들에 대해 X선에 대응하는 스펙트럼 파장을 예측하는 등 X선 연구에 큰 업적을 세웠다. 이 모든 내용들은 훗날 화학과 물리학의 기초로서 원자의 속성을 이해하고 물질 표면에 구성 원소를 분석하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므로 인류를 위한 헌신으로 해석했다.


X선 분광학을 개척하고 새로운 주기율표를 만들어내기까지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Henry Gwyn Jeffreys Moseley)는 1887년 11월 23일 도싯주 웨이머스에서 태어났다.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하고 1910년에 맨체스터 대학교 특별연구원으로 스승인 어니스트 러더퍼드 아래에서 연구활동을 했다.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으로,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연구를 하던 맨체스터 대학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에게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의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헨리 모즐리는 이 시절, 연구에 하루 15시간씩 몰두하면서 야채샐러드와 치즈로 끼니를 때우며 버텼다. 러더퍼드 지도하에 방사능을 연구하다가 X선 연구로 방향을 바꾼 이후 1913년에는 각 원소의 고유 X선을 측정해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다. 찰스 다윈의 손자인 C.G다윈과 X선 산란 협력 연구도 진행했다. 이로써 그는 X선 분광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당시 멘델레예프의 방법으로, 원자량의 순서에 따라 원자번호를 매기는 방법에는 니켈(28번), 코발트(27번)에서 순서가 맞지 않았고 모즐리의 연구는 이 현상의 원인을 밝혀내고 원자번호가 원자핵 속의 양전하 수에 비례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이를 통해 당시 4개의 원소(43번, 61번, 72번, 75번)를 제외하고 주기율표 상의 다른 원소들의 위치를 모두 채울 수 있게 되었다.


X선을 연구하면서

모즐리의 법칙(Moseley’s law)은 원자에 음극선(가속 전자)을 조사하면 방출되는 X선 중 가장 세기가 강한 K 선에 관한 실험 법칙이다. 모즐리는 방사된 X선 주파수의 제곱근이 원자 번호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발견했고, 이러한 발견은 훗날 판 덴 브룩(Van den Broek)과 닐스 보어의 원자 모델에서 원자번호가 원자핵의 양성자 수와 동일하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여러 가지 원소에 대한 K 및 K 엑스레이 방출선에 대한 사진 기록 (사진 = 위키백과)

<모즐리의 X선 방출 실험>
① 모든 원소에 넓은 파장 영역의 X선을 조사한다.
② 각 원소들은 각각 특정 X선 파장을 흡수해서 원자의 핵 근처 전자들이 더 높은 에너지 상태를 가지게 된다.
③ ②의 원자들이 바닥상태로 전이되면서 각 원소 별 특징적인 X선을 방출한다. 이를 2차 X선이라 부른다.
④ 2차 X선 중 가장 작은 진동수(최소진동수)의 제곱근 순으로 원소들을 배치한 뒤 번호를 매긴다.

<해석>
원자핵의 양성자 수가 많을수록 전자가 들뜨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전자가 흡수할 수 있는 X선의 에너지 크기가 증가하고, 따라서 여기되었던 전자가 바닥상태로 전이될 시 방출하는 X선의 최소진동수의 제곱근도 증가하게 된다. 모즐리는 이 X선 방출 실험을 통해 핵의 전하량을 대략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이 전하량 값은 핵의 양성자수와 관련이 있다.


새로운 형태의 주기율표를 개발하다

모즐리 이전에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사용되었다. 1879년 러시아 화학회에서 멘델레예프는 63종의 원소들의 원자량이 증가하는 순서대로 나열한 주기율표를 발표했다. 그러나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서는 원자번호와 원소들의 주기적인 특성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모즐리는 X선을 연구하면서 모든 원소의 화학적 성질은 원자량이 아닌 원자번호, 즉 양성자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적용한 새로운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또한, 모즐리의 법칙에 따라 원자번호가 명확하지 않은 원소의 주기율표상 위치를 지정했다.


멘델레예프의 빈칸이 있는 주기율표 (사진 = 부산과학기술협의회)


현대의 표준 원소 주기율표 (사진 = 사이언스타임즈)


비운의 죽음, 전문연의 시작

모즐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공병 장교로 자원해서 참전했다가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관련된 연구주제를 연구했던 다른 과학자들은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고, 모즐리도 살아있었더라면 분명 노벨상을 수상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모즐리의 스승 러더퍼드는 모즐리의 전사가 제1차 세계대전이 영국에 입힌 최대의 타격이라고 말하며 크게 슬퍼했다고 한다. 그는 처칠에게 편지를 보내 “과학 기술의 미래를 책임지는 연구원들이 전쟁에서 죽는 꼴을 볼 수 없다”며 현재의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의 전문연구요원제도는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대신에 국내 이공계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며 36개월간 연구하는 것으로 병역을 대체하는 제도이다. 이는 ‘이공계열 석사학위’이상을 받은 사람만 지원할 수 있다. 전문연구요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석사 전문연구요원은 석사를 졸업한 후 연구기관에 취업해서 3년 일하면 병역이 해결되는 것이다. 회사에 지원해서 공개 경쟁 채용과정을 거친 뒤 선발되는 과정이다. 두 번째, 박사 전문연구요원은 박사과정 중에 병역 혜택을 받는 것이다.


여덟 번째 자몽상의 주인공, 모즐리

모즐리 이전의 과학자들은 원소의 주기성을 원자량으로 해석해서 주기율표상에 다양한 오류가 발생했다. 그러나 모즐리는 자신의 연구 분야였던 X선 연구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X선 방출 실험을 통해 핵의 전하량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고, 이를 주기율표상에 연관 지으며 현대 주기율표의 토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즐리의 발견은 모든 화학 분야를 진전시키는 토대가 되었다고 판단되며, 이에 자몽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참고문헌

[1] 김은영. (2021). “주기율표를 만든 천재들”.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88%98%ED%97%AC%EB%A6%AC%EB%B2%A0-%EB%B6%95%ED%83%84%EC%A7%88%EC%82%B0-%EC%A3%BC%EA%B8%B0%EC%9C%A8%ED%91%9C%EB%A5%BC-%EB%A7%8C%EB%93%A0-%EC%B2%9C%EC%9E%AC%EB%93%A4/
[2]”모즐리의 법칙”. https://ko.wikipedia.org/wiki/%EB%AA%A8%EC%A6%90%EB%A6%AC%EC%9D%98_%EB%B2%95%EC%B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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