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2023 겨울 자몽 시리즈] 0. 과학의 사회적 본성(Social Nature of Science) 시리즈를 시작하며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몽 6기 | 김보현
  
  
   

“제 주장은 과학적입니다!”

 여러 사회정치적 논쟁에서 항상 등장하는 표현이다. 흥미롭게도, 논쟁 상황에서 “과학적이다.”라는 표현은 자신의 주장이 이해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초월해서 객관적이고 옳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쓰인다.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 흔한 표현은 우리 사회가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은 사회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지식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과학 지식의 생산은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이뤄지고 있을까? 이번 자:몽 가을 대주제 시리즈는 과학 지식이 생산된 여러 역사적 사례를 소개하고, 각 사례에서 사회적 맥락이 과학 지식의 생산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리즈이다.

 사실, 과학기술에 사회적 맥락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크게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해 진행된 핵무기 기술 개발이나, 팬데믹 상황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발한 코로나 백신과 같은 사례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과학기술은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사회와 연관되어 있다. 단순히 실제 사회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기술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회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순수 자연 과학조차도 사회적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들 자연과학은 자연의 관찰과 측정 결과에 맞는 가장 이성적이고 옳은 설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관찰과 측정을 통한 지식의 생산의 모든 과정이 인간 활동이기에, 살아온 배경과 그에 따라 인간에게 학습된 사회적 배경이 어떤 형태로든 반영된다.

천동설과 지동설 - 종교와 과학의 싸움?

 자연과학 지식에 사회적 요소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관여되어 있는지를 종교와 과학의 싸움으로 대표되는 천동설과 지동설 사례를 통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흔히들 종교적 관점으로 만들어진 천동설 모형이 관찰 사실을 더 잘 설명하는 과학적인 지동설로 변화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게 된 과정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적 맥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천동설을 대표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과 지동설을 대표하는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은 사실 모두 관측 사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행성의 역행 운동이나 여러 관측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정말 복잡한 주전원을 수없이 도입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에 비해 주전원이 필요 없었던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은 훨씬 더 단순했다. 당시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신플라톤주의 흐름에 따라 단순미를 추구했고, 이런 사상적 풍토 속에서 지동설이 선택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종교적 이유로 관측 사실을 무시한 천동설과, 관측 사실을 근거로 과학적으로 만든 지동설이 대립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양측 모두 천상계의 불변성이라는 종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둘 다 서로 다른 체계로 관측 사실을 최대한 잘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모형은 각자 설명하지 못하는 관측 사례들이 많이 존재했는데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지동설이 선택된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과학지식사회학과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등장

 그렇다면 과학 지식 역시 다른 지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맥락 속에 생산된다는 관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1960년대 이후 과학지식사회학의 등장과 함께 과학지식 역시 사회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는 관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지식사회학이란, 어떤 학문이나 지식이 사회적인 맥락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사회학 분야이다. 지식사회학은 1920년대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개념이지만, 흥미롭게도 처음 지식사회학이 발달한 시기에는 과학 지식이 사회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한 것으로 생각하여 오랫동안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데이비드 블루어(David Bloor), 배리 반즈(Barry Barnes) 등을 필두로 과학지식 역시 사회적 요소가 있고, 지식사회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과학지식사회학의 포문을 열었다. 특히 이들은 참으로 알려진 과학, 거짓으로 알려진 과학, 성공한 과학, 실패한 과학 모두를 동등한 대상으로서 분석해야 한다는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을 주장하였다. 특히 기존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성공한 과학에 대해 대칭적인 분석의 틀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과학지식사회학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이해의 관점을 크게 확장했다.

 이후 1980년대의 브뤼노 라투르와 미셸 칼롱은 새로운 사회학적 방법론인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제안하였다. ANT는 세상을 인간과 비인간 행위소의 네트워크를 통해 설명하는 방법론으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와 같은 이분법을 벗어나 각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반화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렇기에 ANT는 과학을 과학지식사회학처럼 ‘사회적인 요소가 관여하여 만들어진 지식’으로 단순하게만 설명할 수 없고, 과학자, 실험 도구, 컴퓨터, 관련된 다른 인물 등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소의 복잡한 네트워크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완전무결한 지식이었던 과학이 과학지식사회학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지식이 되었고, 심지어 ANT에서는 사회와 과학의 선험적 경계를 부정하고 지식을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의 최종 산물로 바라본다. 1900년대 후반의 흐름을 거쳐 현재는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과학지식의 사회적 요소를 연구하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해 사회/인문학적 이해를 하는 학문인 과학기술학의 한 분야로서 자리잡았다. 과학 지식에 대한 설명이 점점 더 복잡해지며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의 과학 지식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자가 직업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직업인 과학자는 특정 직장에 소속됨으로써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충실히 부여되고, 그렇기 때문에 존재 자체만으로 사회적이다. 그러므로, 현대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과학 지식에는 많은 사회적 요소가 필연적으로 녹아있다. 게다가 현대 과학은 나날이 고도화되고 복잡해지고 있기에 어떤 문제에 대해 완전하고 일관된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만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과학 지식을 단순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근 3년을 뒤흔든 코로나에서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였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배출 문제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의 큰 이슈 중 하나인 기후 위기에서도 빠짐없이 과학적 근거에 대한 논쟁이 등장한다. 혼란한 사회 속에서 이 과학적 근거들은 과연 어떻게 생겨난 것이고, 각 과학적 지식은 어떤 맥락 아래에서 결론을 짓게 되었는지 한 번씩 생각해 보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성찰일 것이다.

겨울 자:몽 시리즈를 시작하며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과학이 과연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고민해 보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교과서에 기록된 수많은 ‘성공한’ 과학 이론들이 선택되기까지 어떠한 역사적 맥락을 거쳐왔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과학에는 어떤 요소들이 관여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떻게 특정 과학 지식을 믿고 신뢰하는지, 여러 과학적 논쟁들은 어떻게 종결되는지를 고민해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진정한 목적이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 통계학, 지구과학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인 과학학과가 있다. 자연 현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만큼,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역시 자연과학대학의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리즈를 자연과학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흥미롭게 즐기길 바란다.

도움: 과학학과 배상희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김보현 기자 borikim@snu.ac.kr
카드뉴스는 자:몽 인스타그램 @grapefruit_snucn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