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교수 인터뷰

[2024년 3월 신임교수 인터뷰] 뇌인지과학과 전현애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빈문서 빈문서

자연대 홍보기자단 자: 7 | 이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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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뇌인지과학과
* 전공: 인지신경과학
* E-mail: jeonha@snu.ac.kr
* Tel: +82-(0)2-880-4385(연구실)

연구실에 계시는 전현애 교수님.(사진= 이다인 기자)

 
자연과학대학 뇌인지과학과 교수님으로 2024 3월 부임하신 전현애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크게 규칙의 일반화, 언어 규칙, 시간 추정 분야를 연구하시는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MRI, 모델링, 눈동자 추적, TMS 등 뇌인지과학의 연구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과학자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을 기사 속에서 교수님의 이야기로 들어보자.


1.
새로 부임하신 만큼, 아직 교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전현애입니다. 3 1일부터 서울대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PhD는 인지신경과학을 전공했고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막스 플랑크(Max Planck Institute for Human Cognitive and Brain Sciences)에서 포닥을 했었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디지스트 뇌과학과에서 부교수까지 지냈습니다


2.
서울대학교의 신임 교수님이 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


  너무 좋아요. 주변에 친한 교수님들도 많고, 학과 교수님들도 다 너무 좋은 분들이고, 관악산 풍경이 있는 연구실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해요. 넓은 실험실도 있고 우수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요. 몸은 너무너무 바쁜데 마음은 너무너무 편해요. 정말 신나고 기뻐요.


3.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 나가실 연구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연구 분야는 쉽게 이야기하면 세 가지로 구분이 돼요.  

 하나는 전문 용어로 rule generalization(규칙의 일반화)라고 하는 거예요. 규칙의 일반화는 규칙을 배우는 것과는 달라요. 규칙을 배운다는 건 그냥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규칙들을 익히고 외우고 적용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일반화는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거예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렸을 때 응용하고 적용하는 능력이죠. 고차원적인 응용력인 규칙 일반화가 안 되면 매번 새로운 걸 또 배워야 하지만 일반화가 잘 되면 이미 배운 것을 응용해서 새로운 것을 더 효과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어요. 그러므로 뇌 입장에서도 훨씬 더 효율적이죠. 저는 어떻게 우리의 두뇌가 규칙의 일반화를 수행해 나가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language rule(언어 규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실 언어도 규칙이거든요. “나는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말이 되지만 나는 너는 좋아하는 이렇게 말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문법 규칙에 맞지 않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이런 언어의 규칙이 두뇌에서 어떻게 표상되는가에 관심이 많았어요. 최근에 관심 있는 것은 LLM, Large Language Model(대형 언어 모델, 대표적인 활용 예로는 CHAT GPT가 있다.)이에요. LLM으로 과연 인간의 언어가 가질 수 있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요. 인간이 말을 하고 굉장히 자연스러운 대화를 들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들이 있는데 그 영역들로 LLM의 알고리즘을 개발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개발된 알고리즘으로 다시 문장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 다음 이 문장이 정말로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문장인지 인간한테 다시 테스트하는 거예요. 이렇게 LLM brain imaging을 연결한다면 인간 두뇌에서 만들어내는 인간 언어의 핵심 요소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이 분야에 대해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파고들 생각입니다. LLM이라는 거대 언어 모델을 도입해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언어 처리에 어떤 neural mechanism(신경기전)이 작동하는지 연구하고 싶은 거예요.   

 마지막 연구분야는 시간의 흐름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 분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공부를 할 때는 3시간 했나 봤더니 30분밖에 안 지났고 반면에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시간이 쑥쑥 지나가서 한 30분 했나 싶으면 벌써 3시간이 지나가죠? 우리가 겪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동일한데 왜 내 뇌는 다르게 느끼는 걸까요?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이렇게 느끼는 걸까요? 지금 처해 있는 환경, 지금 속해 있는 context(맥락)이 어떠냐에 따라서 시간 추정은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아요. 뇌에서 재미가 있으면 다르게 추정하기도 하고 이때쯤 뭐가 나오겠구나 하고 기대하면 시간 추정도 달라져요.

 지금까지 언급한 주제들을 brain mechanism(뇌 기제)과 연결해서 연구하고자 합니다. Psychophysics(정신물리학)에서 출발하여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를 통해서 신경 연관성을 보고,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를 통해 원인 효과를 보고 Mathematical Modeling으로 어떤 행동 패턴을 정형화하고 Eye-tracking(안구운동추적)을 통해서 더 명확한 행동 추정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4.
교수님께서 사실 뒤에서 여쭤보려 했던 내용도 많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웃음). 방금 전 규칙의 일반화 얘기를 하셨는데 제가 찾아봤을 때는 이게 통계적 학습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개가 같은 것인가요
?


 아니에요. 통계적 학습은 statistical learning이고 규칙의 일반화는 rule generalization이예요. 인간은 신기하게도 주변에 있는 환경에서 자극의 규칙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어요. 관련해서 제 학생이 했던 실험을 소개하자면, 모니터에서 강아지가 톡톡톡톡 튀어나오고 피험자들은 나오는 강아지들의 위치에 따라서 버튼만 누르면 돼요. 상당히 단순한 실험이죠? 사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굉장히 복잡한 규칙이 숨겨져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건 사람들의 행동이, 즉 버튼을 누르는 response time(반응 시간)이 점점 짧아져요. 단순히 여러 번 누르다보니 손가락 운동이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한다면 반복했을 때 규칙이 있든 없든 반응시간은 줄어들겠죠? 그런데 규칙이 없는 조건에서는 줄어들지 않아요. 규칙이 있는 조건에서만 줄어들죠. 결국 그 규칙을 내재적으로 우리가 학습을 한다는 것이고 실험 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전혀 규칙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에요. 즉 어떤 규칙을 자신도 모르게 추출하는 능력이 통계적 학습이에요. 저희 실험에서 이런 통계적 학습을 하면서 functional MRI(기능적 MRI)를 찍었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가 뭔가에 열중하면 주의 집중과 관련된 두뇌 네트워크가 굉장히 활성화됩니다. 그러나 저희 실험에서 통계적 학습을 잘 하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주의 집중 네트워크 활성화가 줄어들었습니다. 통계적 학습은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 implicit learning(암묵적 학습)이기 때문에 내 뇌가 알아서 집중하다가 됐다 싶으면 스스로 attention을 놓아버려서 집중과 관련된 네트워크의 개입이 점차 줄어들어요. 일반적으로 의식하고 주의 집중을 해서 하는 학습, explicit learning(명시적 학습)과는 조금 달라요. 통계적 학습은 그래서 재미있어요. 내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내 뇌는 규칙성을 다 추출해내는 것이 얼마나 편해요.


5.
아까 MRI나 수학적 모델링, 눈의 흐름을 쫓는 것 등의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MRI를 사용한 뇌인지 연구에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이 모델링을 어떻게 만드시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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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RI 영상을 확인하는 전현애 교수님 연구실.(사진= 이다인 기자)

 
MRI
functional MRI(기능적 MRI)는 각각의 뇌 영역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 기능을 하기 위해 어떤 네트워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는 것이에요. fMRI의 가장 큰 장점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non-invasive(수술을 하지 않고)하게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죠. 살아 있는 사람의 brain activation(뇌 활성화)를 정밀한 spatial resolution(공간 해상도)과 비교적 빠른 temporal resolution(시간 해상도)으로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법이에요

 모델링을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에 대한 수학 공식을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아까 통계적 학습에서 규칙에 익숙해지면 반응 시간이 줄어드는 행동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반응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무엇이 나올지 미리 예측하는 것일 수 있고 피실험자가 학습에 무척 집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기대와 관련된 parameter(매개변수)를 하나, 집중과 관련된 parameter 하나를 추가하고 학습과 관련된 그동안의 여러 실험심리학적 모델을 응용해서 자신의 데이터를 가장 잘 설명해내는 수학 공식을 만들어내요. 그리고 이 모델이 얼마나 좋은 모델인지 증명하는 여러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매개변수들을 중심으로 fMRI 데이터를 분석해요. 예전에는 fMRI 연구를 할 때, 피험자들에게 “a라는 작업을 수행하세요.”라고 한 후에 결과를 얻고 나면이 활성화 영역은 a라는 과제를 수행할 때 관련있는 영역입니다라고 설명하는 식이었어요. 하지만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는 매개변수를 이미 수학적 모델에서 뽑았기 때문에 한번 정제된 그 모델을 중심으로 fMRI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를 Model-based fMRI 라고 합니다. 이처럼 Mathematical modeling fMRI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방법론입니다.  


 안구운동 추적을 통해 동공의 크기 변화, 눈동자의 움직임, 눈동자가 특정한 곳에 머무는 시간 등등으로 무의식적인 인지과정을 계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과정이 머릿속에서 진행된다면 눈동자는 본인도 모르게 다음에 나올 자극의 위치에 가 있는 것이죠. 혹은 주의를 확 끄는 자극이 나타나면 동공이 확장되기도 하고요. 이렇듯 안구운동 추적은 머릿속의 복잡한 인지적 과정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 중 하나입니다.

TMS를 사용하는 전현애 교수님 연구실.(사진= 이다인 기자)


 조금 생소할 수도 있으나 TMS(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경두개자기자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개골을 뚫고 자기자극을 주는 방식인데, 처음 들으면 상당히 무시무시하지만, 사실 전혀 무섭지 않고 현재 병원에서도 쓰이고 있는 매우 안전한 장비입니다. 저도 여러 번 경험 해 봤습니다. 머리에 전자기 코일을 위치시키고 국소적으로 자기장을 통과시켜 특정 영역에만 신경세포의 활성 혹은 억제를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인체에 무해하게, 사전에 미리 개인별 threshold(임계값)을 측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안전하게 시행합니다. 참고로, TMS fMRI는 환상의 커플이에요. fMRI는 어떤 인지 과정의 수행과 Blood-Oxygen-Level dependent(BOLD) signal(혈중 산소치에 의한 신호)의 상관관계를 관찰한다면, TMS를 이용해 그 상관관계가 관찰된 네트워크, 혹은 활성화 영역을 자극하여 인과관계를 알아낼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연구실에서는 MRI TMS를 늘 함께 사용합니다


6.
연구실 홈페이지를 봤을 때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시간 추정 부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사람들이 시간 추정을 굉장히 재미있어 해요. 그런데 이 시간 추정이 알츠하이머, 파킨슨, ADHD ,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정상인의 시간 추정관련 뇌신경기제를 알아야 이런 환자들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 추정은 일상생활에서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한 대가 나를 향해 오는데, 저 차가 저 속도로 내 앞에까지 오려면 몇 초 후에 오겠구나....’라는 시간의 흐름을 잘 추정해야 다치지 않겠죠.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이 이런 속도로 이렇게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이 속도를 잘 추정하여 내가 여기서 끼어 들 수 있겠구나’, 하는 식의 turn-taking(주고받기)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악기를 연주할 때도 시간의 규칙적인 흐름, 즉 박자에 대한 추정이 안 되면 음악이 엉망이 되겠죠. 그래서 시간의 흐름은 단순히 재미로만 볼 것은 아니에요.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되는 인지기능이고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요. 또 재미있는 것은 시간은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데 우리는 시간을 측정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의 식스센스(6)가 필요한 것 같아요.


7.
교수님께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기억에 남는 연구는 아무래도 고생을 많이 한 연구겠지요. 그런데 모든 연구에서 고생해서 제가 했던 연구는 다 기억에 남아요. , 교수가 된 이후부터는 제 학생들과 같이 고생하며 연구해서 그런지 더더욱 기억에 많이 남는데, 피질 표면에서의 베이즈 기반 메타-분석(BMACS)이라는 neuroimaging(뇌 영상) 기법을 개발한 연구가 참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인간의 추론 능력에 관해서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연구자들이 일관된 이야기보다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중구난방으로 하는 것 같았어요. 이런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그 동안의 연구들을 싹 다 모아서 메타분석을 좀 해 보자’, 는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하지만 메타 분석과 관련된 기존의 기법들은, 하나씩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 와중에 제 학생 하나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제 실험실 학생들의 최대 강점은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특히 저도, 학생도 매일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어요. 학생이 칠판에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이론을 설명하고 매일 저를 설득하는 작업이 몇 달 이상 계속 되었어요. 왜냐하면 지도교수를 설득시켜야 리뷰어(논문을 심사하는 사람)를 설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중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러 가지 통계 기법들과 뇌영상 기법의 개발을 거듭하여 결국 우리가 BMACS라는 분석 기법을 만들어냈고 이걸 이용해서 인간의 추론 능력과 관련된 brain mechanism(뇌 기제)을 재발견했어요. 학생도 저도 고생도 많이 했지만 교수와 학생의 흥미가 맞아떨어진 이상적인 연구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학생들을 지도할 때 10년 후에 저랑 같이 일을 할 동료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지도합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하면서 이미 이 학생은 나의 동료가 된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러니 더욱 기억에 남을 수 밖에요.


8. 언어 분야에서 하시는 연구도 소개해주세요.


 예전에는 통사와 관련된 뇌 활성화를 주로 연구했었지만 점차 일상적인 언어의 처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최근에는 은유적 표현이 다른 인지 과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연구했었어요전통적으로 언어학을 분류하는즉 syntax(통사론), semantics(의미론), morphology(형태론), phonology(음운론), pragmatics(화용론등을 벗어나서 일반적인 일상 생활의 언어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거죠언어를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라는 거예요언어가 굉장히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언어는 어떤 일반적인 인지 과정예를 들어 기억집중판단창의성까지 함께 결합해서 일어나는 고위 인지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그러니 언어를 다른 인지 작용들과 연결해서 통합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필요해요.


9.
이제 교수님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서, 현재 전공 분야를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저는 원래 규칙, 논리 이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syntax(통사론)에 완전히 매료됐고 따라서 이 통사론을 전공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통사론을 열심히 공부할수록 자꾸만 내가 syntax 이론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것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다 우연히 스티븐 핑커의 『The Language Instinct(언어 본능)』라는 책을 보고 인지신경과학(여러 인지 과정을 신경과학적 수준에서 연구하는 분야)이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스티븐 핑커의 말들을 찾아보게 되고 그분이 이야기한 여러 학자들을 찾아보게 되면서 뇌과학에서 언어도 공부하는구나, 아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 거였어.” 라고 깨닫게 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이 분야로 돌진했습니다. 마침 대학원 지도 교수님이신 ()이경민 교수님은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이시면서 인지과학 협동과정 겸임 교수님이셨어서 일반적인 언어처리는 물론 실어증 환자나 치매 환자의 언어 병리에도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MRI, EEG(electroencephalogram, 뇌 내의 전위변화를 기록한 파형), TMS, 게다가 신경심리 연구까지 가능한 시설까지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박사를 따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포닥을 했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는 언어를 확장해서 점차 비언어 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언어의 규칙 중 중요한 것이 바로 hierarchy(층위)인데, 이것은 수학에도 있고, 음악에도 있고 우리의 행동 양상에도 있거든요. 결국 제 연구의 시작은 언어학, syntax(통사론)에서 시작됐지만 결국엔 규칙이라는 일반적인 영역으로 확장됐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의 연구 분야가 결합되는 것이 뇌인지예요. 뇌인지를 공부하려면 신경과학만 해서는 안 되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인지과정, , 프로그래밍, 통계학, 수학, 물리 등을 interdisciplinary(학제적, 여러 학문 분야가 연관된)하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본인 전공의 전문성을 충분히 키워나가면서 다른 연구분야와의 접목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학제적 연구, interdisciplinary research는 자신의 전문성이 흔들리지 않게 땅에 발을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에 휙휙 날아가버리는 근본없는 흉내만 내는 추한 꼴이 될 수도 있어요


10.
교수님께서 학부생이나 대학원생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


 지도교수님께서전현애는 참 애가 밝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무엇이든 열심히는 했어요.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원하는 고점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죠. 그렇다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학생은 절대 아니었고요, 못 하는게 훨씬 많았죠. 다만 중도 포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시작하면 끝을 보긴 했었네요. 물론 노는 것도 참 열심히 했습니다.


11.
어떻게 교수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지금까지 들어보면 좋아하는 연구가 많으셨던 것 같아요
. 


 맞아요.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무척 많았습니다. 주어진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다 보니 논문이 나왔고 논문이 나오다 보니 포닥을 가게 됐고 그곳에서도 계속 연구를 하다보니 저에게 교수직이라는 기회가 주어진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고 내 질문거리, 내 연구에 대한 대답을 좇아갔었어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았어요. 아까, 제가시작하면 끝을 보긴 했다고 했는데, 사실 그럴 수 있었던 건 제가 힘들 때마다 주변에서 절 도와줬던 실험실 선배, 동료, 주변 교수님들 덕분이에요.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은 옛날부터 있긴 했어요. 왜냐하면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데리고, 내가 관심 있는 주제를 함께 나누면서, 그 주제를 우리의 주제로 만들어요. 그걸 가지고 우리끼리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과를 내서 학계에 선보이고 동료 연구자들을 설득하는 이 교수라는 직업이, 정말 재밌고 적성에 맞아요.


12.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항상 원하는 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혹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연구실 학생들과 토론하시는 전현애 교수님.(사진= 이다인 기자)


 때때로라기보단 거의 매일 안 풀립니다. 저는 학생들과 매일 연구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거든요. 늘 학생들은 문제를 가져오고 나는 늘 그 문제를 이해하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진 않지요. 다만 함께 노력을 하는 거예요. 원래 연구라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연구는 뭘 배우기만 하려는 수동적인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요. 공부는 교과서에 있는 것을 잘 이해하고 소화시키면 그만이지만 연구는 마치 교과서에 없는 걸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혹은 남이 출간한 논문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거나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그걸 발견하고 더 나은 실험으로 개선하고 변모시키는 것, 즉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틀린 것을 고쳐내고 잘못된 것을 수정해 나가면서 발전시키는게 연구입니다. 그래서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특히 데이터는 웬만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나와요. 이럴 때 극복하는 방법은 그냥 계속 하는 겁니다. 제 선택이고, 제가 원하고, 제가 알고 싶어서 시작한 연구이기 때문이죠.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크니까 힘들어도 그냥 하게 돼요. 어느 유명한 광고의 문구처럼, Just do it. 그거 외엔 딱히 극복할 방안이 없네요


13.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뚜렷한 결과를 못 얻었던 실패의 경험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오랜 시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낸 경험이 있냐고 묻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연구에서 실패란 오직 멈출 때만 일어나요. 멈추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실패가 아닌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거죠. 포닥 때 했던 연구 중에, 언어의 규칙과 수학의 규칙 처리에 대한 neural mechanism(신경기전)을 보는 실험이 있었는데, 저는 수학자들이 갖고 있는 수학과 언어에 대한 자동화 정도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neural mechanism도 두 영역 사이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지도교수님은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강하게 얘기를 하셨고. 결국 결과는 지도교수님의 승리였죠. 이 실험을 위해서 정말 긴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연구했지만 제가 예상했던 결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 분석을 통해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냈고 그것을 가지고 논문을 냈기 때문이죠. 실패는 멈출 때 생겨요. 멈추지만 않으면 됩니다.


14.
그럼 교수님이 계속 과학자이게 하는 원동력은 알고자 하는 욕망일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가 궁금한 걸 알아내고자 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것과 더불어 제 학생들을 좋은 연구자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이 저를 계속 과학자이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현재 제 실험실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제가 처음 교수가 되고 실험실을 열었을 때, 아무런 역사도 없는 신생 연구실을, 저 하나 믿고 따라와 준 학생들이에요. 따라서 이 학생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고, 이들을 정말 제대로 된 연구자로 키워내고 싶은 욕망이 있죠. 앞으로 들어올 미래의 제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저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또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바라건대, 10년 후에는 제 학생들이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연구자가 되어서 저랑 협업도 해주지 않을까요? 그래야 저도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5.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인생 책이 있으신가요
?


 스티븐 핑커의 『The Language Instinct(언어 본능)』이 내 인생을 바꾼 첫번째 책이고 그 다음에는 사실 정말 사랑하는 책인데 (책장에서 책을 가져오시며) 팀 버튼이 지은 책 『The Melancholy Death of Oyster Boy & Other Stories』이에요.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쟤들(연구실에 있던 피규어들)이에요. 팀 버튼을 좋아하는 이유가 스토리는 상당히 단순하고 때론 우울한데, 이와 명확히 대조되는 아름답고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이 사용되는 반전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모두 담겨 있는 심플한 동화인데, 인물 중에는 정상인이 하나도 없어요. 그 부조화 속에서 세상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과 가치를 이야기하죠. 정말 흥미로운 책이에요. 팀 버튼은 하고 싶은 단순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figure(캐릭터 형상)로 그려내요. 논문을 이렇게 쓰고 싶어요.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나 뚜렷하고 굉장히 단순한데 그것을 너무나 아름답게 과학적으로 그려내는 거예요. 여기서 아름다움은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설계해서 누가 보더라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과학을 하는 것이죠. 아주 단순한 연구 주제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법과 데이터로 스토리를 아름답게 작성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팀 버튼의 책은 내가 논문을 이렇게 쓰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에요. 저기 있는 figure(팀 버튼의 책에 나온 캐릭터 피규어)같은, 하나의 핵심 스토리와 수많은 문장을 대체할 수 있는 정말 멋진 figure(도표) 하나, 그것들로 점철된 아주 깔끔하고 명쾌한 논문이 진정한 멋있는 논문이 아닐까요?


16.
만약 행복을 공식으로 정리한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


 처음 그 질문을 받고 솔직히 말해 웹사이트에서 물리 공식을 정리해놓은 PDF 등을 다 찾아봤어요. 그런데 질문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행복을 과연 공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공식이라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행복은 사람마다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것을 느끼는 지점도 다르죠.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공식으로 정의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을 공식으로 정의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아니, 행복이란 말도 너무 거창한 것 같아요. 내가 언제 즐거운지에 집중을 하고, 하루에 딱 한두 번만이라도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그리고 그 횟수를 자꾸만 늘려 나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17.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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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즐거운 게 무엇인지, 어떨 때 내가 가장 즐거운지 먼저 생각해보세요. 다만 단순히 말초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웹에서 shorts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때 처음에는 즐겁겠지만 이걸 평생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할 수 있겠어요? 정말 힘들어도 하고 나면 보람이 있고, 성취감이 있는 그런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얻은 조언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조언을 구하러 다니기는 하는데, 조언을 듣는 것에서 만족하고 멈추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조언을 들었으면 그 조언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면 좋겠어요.


18.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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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대 학생들은 과학, 진리를 탐구하고자 오는 사람들이잖아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원래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이 크다면,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원래 연구는 어렵지만 연구에서 얻는 기쁨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커요. 다만, 자기가 갖고 있는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정말 인생의 긴 시간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을지는 실제로 해 봐야 알아요. 말로만관심있다고 하지 말고 뭔가를 실천해 보는 학생들이 되길 바라요.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턴십을 적극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길 바라요. 결국 일은 대부분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것을, 저도 요새 많이 깨닫습니다. 내 가족, 친구, 교수님, 실험실 동료는 물론, 심지어 몇 번 인사 나눈 수업의 잘 모르는 친구들과도 서로 배려하며 잘 지내는 것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자연과학대학 홍보기자단 자:몽 이다인 기자 24da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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